(대전환 뉴딜)④일자리가 사라지면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일자리 전환, 숙련 사다리, 지능산업 일자리, 활동소득
2026-07-31 06:00:00 2026-07-31 06:00:00
몇년 전 기본소득 논쟁은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 미래전략 논쟁이었다. 당시는 미래였지만 지금은 현실이 된 AI 대전환. 대한민국은 이 파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난 4년 동안 국회 정무위와 산자위에서 이 문제를 고민해 왔던 김종민 의원이 7회에 걸친 연재 기고를 통해 대한민국 미래전략 '대전환 뉴딜'을 제안한다. 여러 쟁점에 대해 다양한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16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콘퍼런스 'GTC 2026'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오늘은 불편한 진실을 먼저 꺼내려 한다. 사라지는 일자리는, 지키려 해도 지킬 수 없다. 먼저 숫자를  보고, 그 구조 위에서 어떤 '희망'을 새로 올릴 것인가를 이야기하자.
 
부를 만드는 힘과 일자리를 만드는 힘이 갈라졌다
 
한 세기 전, 세계 최대 기업은 곧 세계 최대 고용주였다. 전성기의 US스틸은 34만명, AT&T는 100만명을 고용했다. 기업의 성공이 곧 사회의 성공이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 엔비디아는 3만6000명으로 시가총액 5조달러를 만든다. 한국도 같은 길 위에 있다. 최종 수요 10억원이 만드는 취업자 수는 2005년 20명에서 2022년 8명으로 반 토막 났고, 반도체는 2명에 불과하다(한국은행). 수출이 사상 최고인 해에 청년 고용이 무너지는 '고용 없는 성장'은 이 구조의 필연이다. 기업의 잘못이 아니라 기술의 속성이다. 그러나 사회가 그 결과를 그냥 받아들일 일도 아니다. 구조가 바뀌었으면, 설계도 바뀌어야 한다.
 
'일자리 지키기'에서 '일자리 전환'으로
 
지금까지 일자리 정책의 목표는 총량이었다. 그러나 대전환기의 진짜 문제는 전환이다. 없어질 일자리는 없어진다. 관건은 전환의 속도를 사회가 감당하게 조절하고, 그 비용을 개인이 홀로 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지키기'에서 '전환'으로―일자리 대전환의 출발점이다. '직무 분석→조기 경보→전직 훈련→재취업→소득 안전망'을 하나의 원스톱 경로로 잇는 신노동 전략, 그리고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시간 단축의 사회적 합의다. 방향은 나와 있다. 합의와 결단이 필요할 뿐이다.
 
일자리 전환의 충격은 평등하지 않다. 지난 3년 사라진 청년 일자리의 98.6%가 AI 고노출 업종이었는데,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1만개 늘었다(한국은행). 경험을 쌓은 시니어에게 AI는 지렛대지만, 경험을 쌓을 기회조차 없는 청년은 입구에서 밀려난다. 신입이 하던 자료 정리와 보고서 초안―'배우면서 하는 일'이 AI가 가장 먼저 대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취업난이 아니라, 한 세대가 숙련될 기회 자체를 빼앗기는 위기다. 숙련의 사다리는 첫 칸부터 오르는 것인데 그 첫 칸이 치워지고 있다. 구직이 1년 늦으면 평생 실질임금이 6.7% 준다(한국은행). 오늘의 20대에게 이 일은, 100년 전의 대공황에 못지않은 위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월22일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방문해 임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뉴시스)
 
청년의 숙련 사다리,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 처방을 시장에 맡길 수는 없다. 개별 기업에 합리적인 신입 축소가 사회 전체의 숙련 기반을 무너뜨리는 전형적 시장 실패이기 때문이다. 100년 전 대공황 때 미국은 뉴딜의 시민보전단(CCC)으로 청년 300만명에게 일과 훈련을 제공했다. 그 규모의 결단으로 제안한다. '청년 숙련 일자리'의 시대를 열자.
 
몇 달짜리 체험 인턴이 아니다. 3~5년에 걸쳐 청년이 실제 현장에서 일하며 배우는 숙련의 과정이다. 기존 업무에 더해 AI 시대의 새 일을 개척하는 활동까지 포함하고, 정당한 보상을 붙인다. 핵심은 일과 교육의 병행―현장의 일과 이론, AI 활용 교육을 함께 받아 AI를 부리며 일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독일은 3년의 아우스빌둥으로 청년 실업률을 유럽 최저 수준으로 지켰다. 지멘스는 한 해 수천억 원을 들여 4000명이 넘는 청년을 훈련시키며 협력사 인력까지 길러낸다. 산업 전체의 숙련 인프라다. 삼성과 SK, 현대도 이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 기업 혼자가 아니라 국가가 함께 책임지자. 
 
재원은 어디서 나오는가. 원리적 해답은 6회에서 다루되, 당장의 실천부터 말하자. 국가가 마중물을 대고 반도체 기업이 앞장서는 '미래투자기금' 시범사업이다. 가장 크게 성공했고 매출 대비 일자리를 가장 적게 만드는 산업, 국민이 키운 반도체 신화가 다음 세대의 숙련을 키우는 데 흐르게 하자. 작동 원리는 '출자'다. 세금이 일방통행이라면, 출자는 지분과 권리를 받고 위험과 성과를 나누는 순환이다. 시범사업으로 작게 시작해 성과로 검증하고 참여를 넓혀가자.
 
새로운 일자리―당장은 지능산업 일자리
 
전환과 사다리가 '지키는' 전략이라면, 이제 '만드는' 전략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지능산업 일자리, 장기적으로는 활동소득 일자리다. 산업화가 공장 일자리를, 정보화가 IT 일자리를 만들었듯, 지능산업 시대의 새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AI를 개발·활용하는 일, 데이터를 다루는 일, AI와 로봇을 현장에 심는 일 등 양질의 지능산업 일자리를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 뉴딜은 새 직업군을 낳고, AI 고속도로와 에너지 클러스터는 지역에 일자리를 심는다. 국가가 마중물을 대고 시장이 일자리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특히 창업이 중요하다. AI 시대는 작은 팀이 큰 기업이 되는 시대다. 자금과 공간, 재도전의 안전망까지 갖춘 지능산업형 창업 인프라를 깔아, 숙련을 마친 청년의 세 번째 길이 실제로 열리게 하자. 
 
그러나 지능산업 일자리가 모든 사람을 품지는 못한다. 더 긴 호흡의 질문으로 가야 한다.
 
장영재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가 지난 4월13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AI 전환과 노동의 미래:일자리 위기인가, 기회인가?'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근본적 질문―'일'이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대에 '일'이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답의 실마리는 뜻밖에도 '승자독식의 블랙홀'에서 나온다. 블랙홀은 모든 것을 표준화하고 평균으로 빨아들인다. AI가 쏟아내는 글과 그림은 서로 닮아가고, AI끼리 서로를 학습하다 품질이 무너지는 '모델 붕괴' 연구까지 나왔다. 모든 것이 평균으로 수렴할수록, 거꾸로 귀해지는 것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다양성, 그리고 그것을 잇는 연결이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역량'으로 꼽히는 것도 같다. 돌봄, 창의, 공감, 연결. 여기에 사회가 투자해야 한다. 이것을 '일자리 투자'라 부르고, 그 보상을 '활동소득'이라 부르려 한다.
 
일자리투자와 활동소득―국가가 여는 '사회적 시장'
 
활동소득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에 지급하는 소득이다.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과는 다르다. 기본소득 논쟁이 일자리와 소득의 미래를 가장 먼저 물었다면, 활동소득은 그 길 위에서 한 걸음 더 현실로 들어간 설계다. 조건이 있어 재정 부담이 작고 시장과의 마찰이 적으며, 학계의 '참여소득'보다는 넓다. 국가가 도로를 발주하면 민간이 시공하듯, 사회적 가치 활동을 국가가 발주하고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비영리단체가 수주한다. 국가가 직접 고용하는 관제 일자리가 아니라, 국가가 수요를 만들고 민간의 창의가 공급하는 새로운 '사회적 시장'이다. 개인의 활동을 일일이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된 조직과 사업에 발주하고 성과로 평가한다. SOC 투자가 물리적 인프라의 유효 수요 창출이었다면, 이것은 사회적 인프라의 유효 수요 창출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7가지 활동
 
투자의 영역은 일곱 갈래다.
 
첫째, 돌봄이다. 2042년까지 돌봄 인력이 최대 155만명 부족할 전망인데(한국은행), 손잡고 눈 맞추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은 기계가 가장 대신하기 어렵다. '가족'의 이름으로 떠넘겨 온 무급 돌봄·가사 노동은 한 해 500조원 안팎,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이른다는 추계도 있다. 이 노동에 이제 사회가 값을 매기자.
 
둘째, 지식·연구·교육이다. 지역의 평생교육 강사부터 시민 과학자까지, 사회 전체를 하나의 연구개발(R&D) 조직으로 만드는 일이다.
 
셋째, 문화·예술·체육·놀이다. 기계가 노동을 대신할수록 인간의 시간을 채우는 것은 문화다. 그런데 예술인의 창작 연수입은 평균 1055만원, 넷 중 셋이 1200만원에도 못 미친다.
 
다양성을 지키는 최전선의 보상을 끌어올리자.
 
넷째, 소통·미디어·민주주의다. 가짜뉴스가 진실보다 여섯 배 빠르게 퍼지는 시대, 공론을 지키는 일은 민주주의의 인프라다. 더 좋은 민주주의를 원하면 민주주의에 투자해야 한다.
 
다섯째, 연대·봉사·평화다. 이웃을 잇고 갈등을 중재해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일, 고립의 시대에 가장 값진 노동이다.
 
여섯째, 안전이다. 기후재난과 산업재해, 디지털 범죄까지 위험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재난을 예방하고 생활 안전을 지키는 활동이다.
 
일곱째, 환경이다. 기후 대응, 자원 순환, 생태계 돌봄―지구의 일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앳킨슨의 '참여소득'과 에스핑-안데르센의 '사회투자국가', 활동소득은 이 두 이론의 합류 지점에 있다. 일을 '기업의 영리활동'에만 가두지 말고, '가치 있는 활동'으로 넓히자는 것이다.
 
김종민 무소속 의원. (사진=김종민 의원 페이스북 화면 캡처)
 
두 가지 반론에 답한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누가 일하겠느냐." 우리가 보상하려는 것은 놀고먹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누군가 하고 있으나 시장이 값을 쳐주지 않는 노동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치매 부모를 간병하는 자녀를 두고 '일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노동으로 인정되는 범위를 시대에 맞게 넓히자는 것이다.
 
"그 막대한 돈을 어디서 마련하느냐." 정당한 질문이다. 세금으로만 감당하기는 어렵고, 시장의 자금이 흐르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민간이 투자하고 장기 회수하는 SOC 투자 모델을 사회적 투자로 확장하는 구상―6회에서 소개한다.
 
일자리는 사라져도,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키기'에서 '전환'으로 방향을 바꾸고, 당장 청년의 숙련 사다리를 세우고, 단기적으로는 지능산업 일자리를, 장기적으로는 일자리 투자와 활동소득으로 일의 정의를 넓히자. 이것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다. 승자독식의 블랙홀에 맞서 부를 사회 곳곳으로 흐르게 하고, 인간의 다양성과 연결을 지켜내는 길이다. 일자리는 사라져도,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의 성격이 달라질 뿐이다. 
 
근로소득이 흔들리는 시대에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다음 글에서 자산소득의 대중화를 이야기한다.
 
대전환 뉴딜 연재 순서
 
1. 기업의 성공은 국민의 성공으로 이어지는가
- 왜 대전환 뉴딜인가, 승자독식 블랙홀, 3겹의 대전환, 초격차 민생, 정치의 일
 
2. 대전환 뉴딜, 어떻게 할 것인가
- 미래전략, 연결과 순환, 3대 미래투자, 새로운 돈, 새로운 국가
 
3. 대한민국은 계속 벌 수 있는가
- 전략투자, AX, GX, HX
 
4. 일자리가 사라지면,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 일자리 대전환, 지능산업 일자리, 숙련의 시간, 활동소득
 
5. 근로소득이 흔들리면, 무엇으로 사는가
- 국민자산제, 자산소득 대중화, 농지개혁과 자산개혁
 
6. 세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
- 미래투자기금, 세금이 아닌 출자, 새로운 사회계약
 
7. 국가의 일, 시민의 일
- 전략국가, 스마트 국가, 스마트 민주주의
 
김종민 무소속 의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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