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 기자]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에 오르면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대표적 경영 승부수로 꼽히는 하이닉스 인수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당시 시장에서 ‘무리한 베팅’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15년 만에 삼성전자(보통주 기준)를 누르고 코스피 시가총액 1위 기업 탄생이라는 ‘신의 한수’로 이어졌습니다. 전기료 낼 돈이 없어 형광등을 빼며 버티던 SK하이닉스는 현재 엔비디아 핵심 HBM 공급사로 자리 잡으며 글로벌 인공지능(AI) 생태계의 중심이 됐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SK-엔비디아 협력 관련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하이닉스(000660)와
삼성전자(005930)는 전일에 비해 각각 12.47%, 12.31% 하락했습니다. 이날은 최근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 매물이 나오면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등 변동성이 확대됐습니다. 대표 반도체 기업인 양사 역시 12% 넘게 급락하며 시가총액 1위 경쟁을 벌였지만, 결국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앞서며 시가총액 1위를 지켰습니다.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182조9545억원, 삼성전자는 181조3464억원으로 약 8조원 차이를 보였습니다. 전날에 이어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를 앞지른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장기간 유지해 온 국내 증시 시가총액 1위라는 왕좌의 주인이 25년 7개월 만에 바뀐 셈입니다.
2012년 SK그룹은 당시 채권단 관리 체제에 있던 하이닉스반도체 지분을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본격 진출했습니다. SK하이닉스의 출발이었습니다. 인수 금액은 3조4000억원. SK그룹 내부서도 반대가 터져나올 정도로 업계 안팎의 우려가 팽만했습니다. 반도체 업황의 변동성이 워낙 큰 데다 하이닉스가 대규모 적자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에너지와 화학, 정보통신 중심의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지속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자기 확신이 있었습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이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했다가 오일쇼크 여파로 사업을 접어야 했던 뼈아픈 경험과 아쉬움이 작용했다지만, 비전에 대한 믿음이 더 주효했습니다.
적기에 투자만 제대로 하면 상승 사이클에서 투자 금액 이상을 회수할 수 있다고 믿었던 최 회장의 혜안이 증명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인수 첫해인 2012년 2분기에 바로 흑자 전환한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 선제적인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이후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HBM 공급망을 선점하면서 글로벌 AI 생태계 핵심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지난해에만 매출 97조원, 영업이익 47조원를 기록하며 5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영업이익률을 달성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매출이 전년 대비 250% 급증한 343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주가는 1년 전에 비해 900% 넘게 오르면서 기업가치도 빠르게 재평가됐습니다.
향후 전망도 밝습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이 이어지면서 HBM 수요 역시 당분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HBM3E 시장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차세대 HBM4 시장에서도 주도권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AI 반도체 시장의 핵심 고객사인 엔비디아와의 협력 관계도 공고합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AI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기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성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닉스 인수 당시만 해도 SK그룹이 큰 위험을 감수한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인수합병(M&A) 사례 중 하나”라며 “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하고 차세대 메모리 분야에 투자해 온 SK그룹의 전략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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