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새 수출과 증시의 기록적인 숫자를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반도체 호황 덕분에 수출은 또다시 역대 최대를 갈아치웠다.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은 877억5000만달러를 기록하면서 기존 월간 최고였던 지난 3월 수치를 넘어섰다. 중동 전쟁과 고유가 등의 악재를 딛고 3개월 연속 800억달러대 수출 행진을 이어갔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1조달러 안팎의 사상 최대 수출 실적과 세계 수출 5강으로의 도약도 기대할 만하다.
증시 역시 마찬가지다. 날개를 단 반도체 기업 덕분에 코스피 지수가 8000선을 훌쩍 돌파하더니 어느덧 9000선 턱밑까지 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지난달에만 28.5%나 치솟았다. 한 증권회사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시가총액 비중은 지난해 6월 25% 수준에서 54.6%까지 급증했다.
수출과 증시의 경이로운 기록 뒤에는 반도체가 있다. 효자 품목이라고 부를 만큼 반도체가 가져다준 성과는 놀라울 지경이다. 지난 5월 수출액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역대 최대인 42.3%, 371억6000만달러까지 늘어났다. 통상 20% 안팎이던 반도체 수출 비중은 3월 38.1%로 확대됐다가 4월 37.1%로 주춤했고, 5월 40%를 넘어섰다. 주식시장 역시 인공지능(AI)·반도체 대형주 중심의 장세가 강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주 랠리가 국내 증시를 견인하고 있다.
문제는 화려한 기록 뒤에 '반도체 의존도 심화'라는 그늘이 있다는 점이다. 특정 업종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기업 간, 개인 간의 양극화도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실제 내수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과 자영업, 서비스업은 고물가·고금리 늪에 허덕이는 K자형 양극화가 선명해지고 있고, 철강과 석유화학 등과 같은 기존 주력 산업은 중국의 공세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소득·자산 격차 역시 확대되고 있다. 1분기 소득 하위 20% 이하 가구의 여윳돈은 마이너스 44만원으로 적자인 반면, 소득 상위 20% 가구는 실질 흑자액이 345만원에 달했다.
화려한 실적 속 시장 양극화, 경제 불균형을 우리는 이제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반도체에 의존한 K자 양극화를 이대로 놔두고는 경제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K자형 경제에서 아래쪽에 몰려 있는 산업과 기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 또 사회 불안을 키우는 위험한 뇌관이 될 수 있는 소득·자산 양극화를 좁힐 수 있는 정책적 접근을 고민해야 한다. K자형 성장이 고착화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반도체 호황 이후 한국 경제 성장을 견인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할 때다.
박진아 정책팀장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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