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또 역대급 수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산업의 구조 변화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내연기관차 성장 정체와 친환경차 중심 재편 속에 고용 전선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직계열화 하단의 중소 부품사들은 자금과 역량 부족으로 심각한 고용 조정 위기에 직면한 만큼, 노동자들의 직무 전환을 돕는 상생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지난 4월3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 전용 부두에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 (사진=뉴시스)
내연기관차↓…고용도 전환 경로
1일 산업통상부의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5월 ‘내연기관차’ 수출은 34억4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4.4% 급감해 자동차 전체 하락세를 주도했습니다. 반면, 하이브리드차(HEV)와 순수전기차(EV)는 각각 6.8%, 16.0% 증가세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자동차 중심축이 엔진에서 배터리·모터, 전장부품 및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 이동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문제는 기술적 전환이 생산 현장의 일자리 생태계를 흔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박명준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연구팀의 분석을 보면 일자리 충격의 방향성과 다층적인 위기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글로벌 탈내연기관화 국면에서 한국과 독일의 고용 체제를 비교한 분석을 보면, 숙련 체제와 탄탄한 산업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세계 자동차 시장을 장기 집권해 온 독일은 핵심 구동계인 배터리 기술 확산 및 전장·소프트웨어 중심 구조(SDV)의 경쟁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놓쳤습니다.
전통적인 내연기관 체제로 결착된 고용 구조가 탈내연기관화 이행 본격화로 구조조정 압박과 심각한 고용 위기 국면을 맞아왔습니다. 올해 들어 글로벌 리딩 기업들마저 공장 폐쇄와 대규모 구조조정 안을 잇달아 가시화할 만큼 충격파가 상당한 상황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현대·기아자동차 등 완성차 대기업 중심의 수직적 지배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신기술 체제(전기차·하이브리드·SDV)의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글로벌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 도입과 하이브리드 라인업의 유연한 확대로 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겁니다. 고용 측면에서도 퇴직자 자연 감소분을 활용하거나 사내 직무 전환 교육 및 선제적 배치를 통해 비교적 노사 갈등이나 큰 마찰 없이 유연한 전환 경로를 밟아나가는 모습입니다.
고용 측면에서도 퇴직자 자연 감소분을 활용하거나 사내 교육·배치를 통해 비교적 노사 갈등이나 큰 마찰 없이 유연한 전환 경로를 밟아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5월3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주차장에 전기차들이 충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소 하청 부품사 ‘쇼크’
하지만 완성차 대기업의 그늘 아래에 있는 수직계열화 하단의 중소 하청 부품사들은 상황이 다릅니다. 이들은 내연기관 구동장치 소멸에 따른 부품 전반의 수요 감소 타격을 정면으로 맞고 있습니다. 자금·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구조적 긴장과 고용 쇼크 리스크도 떠안고 있습니다.
전기차는 엔진·변속기·배기계통이 사라지면서 내연기관차보다 필요한 부품 수가 크게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의 부품 수가 내연기관차 대비 30~40%에서 더 오른 50~60%가량 적어지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엔진·변속기·연료계통이 필요 없어 전통 내연기관 부품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배기시스템·피스톤·실린더·연료분사 계열 협력업체들은 구조적 시장 축소 압력에 직면해 있습니다.
연구진이 자동차 부품업체 16개사를 조사한 ‘전환 역량’ 분석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동일한 산업 환경에 노출돼 있지만 기업별로 전환 성과가 크게 달라지는 결정적 원인은 단순한 기술력의 차이가 아닌 조직 내부의 ‘인력 전환 역량(HRTC)’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동차 산업의 대전환은 값비싼 신형 설비를 구매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해석하고 흡수하며 이를 다시 생산 조직화할 수 있는 ‘사람의 역량’이 핵심이라는 분석입니다.
완성차 대기업은 자체 인프라를 통해 HRTC를 내재화하고 있지만 당장의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중소 부품사들은 노동자들의 미래 직무 교육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격차에 놓여 있습니다.
물론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올해 '미래자동차산업특별법'이 본격 발효되면서 부품업계 육성을 위한 정책금융 18조원은 전방위적 자금 수혈로 이어질 전망입니다.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속도를 내고 있는 업종별 표준 임금 체계 및 인재 육성 등도 대표적입니다.
지난해 3월26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Ellabell)에 위치한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상생형 전환 거버넌스 확립해야”
그러나 당장의 유동성 위기를 넘기는 자금 지원책만으로는 현장 노동자들의 근본적인 숙련 형성 격차를 모두 메우기엔 여전히 골든타임이 촉박합니다. 결국 고용 생태계의 허리인 중소 부품사의 붕괴를 막고 산업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이익 공유와 정부의 체계적인 전직·재교육 지원이 결합된 ‘상생형 전환 거버넌스’가 확립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향후 과제는 전환을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닌 산업·지역·노동시장 전체의 구조 문제로 인식하고 제조사(OEM)·부품사 간 위험 전가 구조를 재설계하며 국가 산업정책과 지역 전환 플랫폼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노동을 고용 조정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직무·숙련·훈련·노동시간 재설계의 공동 설계자로 재위치시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전환은 ‘빠르게’가 아니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며 이를 위한 타당한 다층적 전환 거버넌스의 유연한 구축이 한국형 전환 경로의 한계를 극복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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