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당국이 중·저신용자와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한 이른바 '씬파일러(Thin Filer)'에 대한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신용평가 체계 개편에 착수합니다. 금융당국은 민간 신용평가사(CB)가 보유한 우량 신용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되면서 금융권의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고 보고 있는데요. 신용정보원 데이터 공유 범위를 확대하거나 민간이 보유한 정보를 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인뱅 등 "차주 긍정정보 활용 문턱 높아"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다음달 '포용금융추진단'을 출범시키고 금융권의 공적 역할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 논의에 착수합니다. 추진단에서는 금융권의 중저신용자 지원 확대와 금융 사각지대 해소 방안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인데, 이 과정에서 신용평가 체계 개편도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동안 당국은 은행권이 고신용자 중심 영업에 치우쳐 있다는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습니다. 은행들은 건전성과 자본비율 관리 부담 등을 이유로 신용도가 낮거나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한 차주에 대한 대출을 꺼리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중저신용자 대출은 상대적으로 위험가중자산(RWA) 부담이 크고 연체 가능성도 높기 때문입니다.
금융권에선 현재 신용평가 체계가 지나치게 연체 여부 등 부정적 정보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실제 상환 능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한 사회초년생이나 자영업자,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등은 충분한 상환 능력이 있음에도 신용평가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해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중저신용자나 씬파일러에 대한 금융 공급을 확대하려면 연체 여부만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 성실 상환 이력 등 다양한 긍정적 정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우량 정보 공유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우량 신용정보가 사실상 소수 민간 신용평가사에 집중돼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국내 개인신용평가 시장은 NICE평가정보와 코리아크레딧뷰로(KCB)가 양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NICE평가정보는 NICE그룹 계열사이며, KCB는 주요 시중은행과 카드사 등이 공동 출자한 구조입니다.
두 회사는 은행·카드사·보험사·저축은행 등 금융회사로부터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 신용점수와 각종 신용평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들 신용평가사들은 단순한 연체 정보에 그치지 않고 성실 상환 이력, 카드 이용 패턴, 대출 상환 내역, 금융거래 행동 정보는 물론 통신요금·공공요금 납부 정보 등 다양한 데이터를 결합해 신용도를 평가합니다.
다만 이 같은 우량 정보는 상당 부분 유료 서비스 형태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특히 자체 고객 데이터가 부족한 인터넷전문은행이나 지방은행, 저축은행 등은 중저신용자 평가를 위해 민간 신용평가사의 데이터를 적극 활용해야하지만 정보 이용 비용 부담이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융위원회는 내달 중 '포용금융 추진단'을 출범하고 신용평가 체계 개편 등을 논의할 전망이다. (사진=뉴시스)
"신용정보원 인프라 확대도 검토"
데이터 접근성 문제가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인뱅 출범 초기에도 기존 시중은행에 비해 자체 고객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 민간 신용정보 이용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최근 금융당국이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를 금융권의 핵심 과제로 제시하면서 이 문제가 다시 주목받는 형국입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CB의 경우 주주 은행이나 카드사들이 비주주 금융사보다 데이터 활용 논의나 경영 정보 접근 등에서 유리할 수 있다"며 "인뱅이나 지방은행, 저축은행 등을 중심으로 정교하게 가공된 우량 데이터가 비싸다는 문제 제기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민간 신용평가사가 보유한 데이터 관련 가격정책에 개입하거나 공개 범위를 강제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신용평가사 입장에서는 신용점수 자체보다도 다양한 정보를 가공·분석해 미래 연체 가능성을 예측하는 모델이 주요 자산으로 평가됩니다. 이 때문에 민간 정보 공개를 강제할 경우 시장 경쟁 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실제로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들의 주주 구성에는 시중은행과 카드사 등 금융회사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데이터 수집·정제·분석에 대한 투자 비용과 지식재산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도 적지 않습니다. 금융권이 제공한 원천 데이터를 활용하더라도 이를 가공해 신용평가 서비스로 발전시키는 과정 자체가 민간기업의 경쟁력이라는 논리입니다.
기존 신용정보원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현재 신용정보원은 신용정보법상 집중기관으로서 금융권 전반의 신용정보를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금융사들은 신용정보원을 통해 연체, 부도, 대위변제 등 각종 신용정보를 공유받고 있는데요. 다만 현재 공유 체계는 연체 여부 등 부정적 정보 중심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민간 신용평가사가 보유한 정보를 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 제공 체계를 개선하거나 정보 제공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이 있다"면서 "신용정보원도 차주의 연체 정보뿐만 아니라 긍정 정보도 방대하게 보유한 만큼 금융사들이 이를 가공 활용할 있도록 데이터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시내 전봇대에 카드 대출 관련 광고가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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