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 K-2금융)⑦QR 전성시대 뒤 숨은 환전·규제의 벽
2026-05-23 06:00:00 2026-05-23 06:00:00
(호찌민=신수정 기자) 베트남이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를 추진하면서 지난해 말 개인 결제 계좌 수는 2억3200만개를 넘어섰고 비현금 결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8배 수준까지 확대되며 동남아 최대 QR결제 시장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의 QR결제 접근 제한과 환전 규제, 중·저신용자를 위한 금융 공백은 여전한 과제입니다. 
 
베트남 호찌민에 위치한 베트남 중앙은행. (사진=신수정 기자)
베트남 중앙은행 간판. (사진=신수정 기자)
 
베트남 "세수·효율 잡는다"…현금 사회서 QR결제 직행
 
베트남 정부와 베트남 중앙은행(SBV)은 디지털 금융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현금 선호도가 높은 국가였지만, 탈세와 지하경제 규모 파악 한계를 해소하고 자금 흐름을 투명화해 세수 기반을 확대하려는 목적이 깔린 것으로 풀이됩니다.
 
동시에 화폐 인쇄·운송·보관 등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됩니다. 신용카드 단말기(POS)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전국에 구축하는 대신 이미 보급된 스마트폰을 활용해 디지털 결제망을 확산하는 방식이 비용과 속도 측면에서 효율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Kepios와 GSMA Intelligence이 공동 조사한 글로벌 디지털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지난해 말 기준 84.4%로 글로벌 평균(63%)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특히 경제 수도인 호찌민은 사실상 베트남 QR결제의 중심지로 꼽힙니다. 호찌민시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베트남 전체 인구의 약 9%가 거주하는 호찌민은 전국 모바일·QR결제 거래 건수의 48~52%를 차지하며 사실상 절반 이상의 트래픽을 흡수하고 있습니다. 전통시장과 노점상을 포함한 시내 가맹점의 90% 이상이 VietQR, NAPAS QR, VNPay QR 등 국가 통합 표준 QR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상태이며, 벤탄시장 등 주요 전통시장에서는 '100% 비현금화(Cashless Market)' 프로젝트도 완료됐습니다.
 
베트남 사이공타워 내 음식점 결제를 기다리며 발견한 현지 QR결제 안내판. (사진=신수정 기자)
베트남 대표 전자지갑 모모(MoMo)의 QR결제 안내판. (사진=신수정 기자)
 
공급자 아닌 소비자 니즈가 관건
 
베트남 QR결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공급자 중심 인프라 확대보다 소비자 수요가 먼저 작동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POS 설치 비용이 부담스러운 노점상과 소상공인 사이에서 별도 장비 없이 종이에 인쇄된 QR코드 만으로 결제가 가능한 구조가 빠르게 확산했고, 소비자들도 현금 없이 즉시 송금·결제가 가능한 편의성에 익숙해졌다는 설명입니다. 베트남 국제 결제원 나파스(NAPAS)가 태국·싱가포르·캄보디아 등 아세안 국가와 QR결제 연동을 확대하면서 현지 지갑 앱 기반 결제가 신용카드 대비 외환 수수료 부담을 낮춘 점도 확산 요인으로 꼽힙니다.
 
국내 사례와 대비된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과거 카카오페이는 QR결제를 무료 보급했지만 소비자 수요 부족으로 확산에 어려움을 겪은 반면, 알리페이는 중국인 관광객 소비 수요를 기반으로 국내 가맹점망을 빠르게 넓혔습니다.
 
베트남 호찌민의 한 국내 금융사 주재원은 "한국은 이미 신용카드 결제가 일상화돼 QR결제 니즈가 크지 않았지만,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알리페이를 안 받을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주재원은 "아세안 결제시장은 소비자 수요가 실제 존재해야 결제망이 확산된다"며 "베트남 QR결제는 대부분 은행 계좌와 연결돼 QR을 스캔하면 계좌 잔액이 즉시 차감되는 직불형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알리페이·위챗페이·잘로페이(ZaloPay) 등 다양한 QR 플랫폼이 공존하고 있다"면서 "한국계 금융사들도 독자 결제망 경쟁보다 현지 QR사업자와 연계한 결제·소비자대출 결합 모델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베트남 호찌민 떤선녓 공항 내에 환전소. (사진=신수정 기자)
한 관광객이 베트남 현지 환전소를 방문해 베트남 동으로 환전하고 있다. (사진=신수정 기자)
 
외환 규제로 글로벌 환전 경쟁력도 밀려
 
베트남이 QR결제 중심의 초디지털 사회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여전히 높은 외환·계좌 규제 장벽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지 QR결제망인 VietQR은 기본적으로 로컬 은행 계좌 기반으로 설계돼 있어 외국인이 이용하려면 장기비자나 현지 계좌 개설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중앙은행은 최근 국제결제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을 논의하고 있으나, 아직까진 외국인의 계좌 개설과 외환거래를 비교적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베트남을 방문한 외국인 상당수는 현지 QR망 대신 자국의 트래블카드나 디지털은행 서비스를 활용해 환전·ATM 인출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리핀 디지털은행인 마야(Maya)와 고타임(GoTyme)은 해외 ATM 출금 시 달러를 현지 통화로 실시간 환전·정산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극도의 편의성을 무기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환전 규제와 사용 편의성 측면에서는 한국 금융권이 동남아 디지털은행 대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베트남 호찌민의 다른 국내 금융사 주재원은 "주말에 베트남 현지 은행 앞에 외국인들이 환전하려고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다른 나라에도 트래블카드가 있는지 직접 물어봤다"며 "줄을 서던 필리핀 사람들이 마야뱅크와 고타임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시스템이 한국보다 훨씬 간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한국은 미리 앱에서 환전을 해야 하지만 필리핀 디지털은행들은 현지 ATM에서 바로 인출하면 실시간 환율이 적용돼 자동 환전된다"며 "이런 부분들을 보면 한국 금융이 결코 앞서 있다고만 보기 어렵다"고 짚었습니다.
 
중·저신용자 위한 포용금융 공백
 
베트남은 도시 전체가 QR결제로 연결된 초디지털 환경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지만, 이런 금융시장 이면에는 여전히 전당포와 사설 환전소 중심의 현금경제가 강하게 남아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특히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제도권 금융 공급이 제한적이다 보니 전당포가 사실상 서민금융 역할 일부를 대신하고 있다는 게 이곳 주재원들의 설명입니다.
 
또 다른 국내 금융사 주재원은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가면 전당포 간판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시장이 크다"면서 "정규직 급여소득자가 아니면 금융기관 대출을 받기 쉽지 않아 아직도 전당포 이용이 활발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베트남에는 한국의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권처럼 중·저신용자를 위한 금융기관이 충분하지 않아 핀테크 업체와 전당포가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며 "전당포만 2만~3만곳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한국도 1990년대까지는 공무원·대기업 직장인 위주로만 신용대출이 가능했던 것처럼 현재 베트남 금융시장도 과거 한국과 유사한 발전 단계에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베트남 현지 은행인 TP뱅크의 페이앱 '챗페이(ChatPay)' 광고물. (사진=신수정기자)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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