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안정훈 기자]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총파업’ 기로에 선 삼성전자 노사가 정부의 중재로 다시 한번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습니다. 이번 협상은 성과급 규모와 제도화·명문화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입장이 첨예한 까닭에 이틀에 걸친 장기전으로 흐르는 양상입니다. 협상에 대한 결론이, 이르면 19일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오는 21일로 예고된 노조의 총파업 돌입 시점을 고려하면 연이틀간 진행되는 이번 사후조정이 사실상 삼성전자의 명운을 가를 ‘최후의 협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노조는 파업 전 변수로 꼽힌 법원의 가처분 인용 판단에도 쟁의행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으로 총파업을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인 만큼, 이번 조정이 결렬되면 삼성전자의 파업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8일 2차 사후조정이 열린 중노위 조정회의장으로 각각 들어가는 삼성전자 사 측 대표교섭위원인 여명구 DS(반도체 부문) 피플팀장(왼쪽), 박수근 중앙노동위원장(가운데),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18일 삼성전자 노사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박수근 중노위 위원장의 중재로 사후조정에 돌입했습니다. 삼성전자 사 측에서는 여명구 디바이스솔루션(DS·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김형로 부사장이, 노조 측에선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 4명이 참석했습니다. 중노위원장이 개별 기업 노사 중재를 위해 조정위원으로 참여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으로, 협상 결렬 후 파업에 돌입할 경우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장 등 심각성이 고려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날 오전 회의에서 노사 양측은 중재위원에게 성과급과 관련한 기본 입장을 설명했고, 오후부터 중노위의 본격적인 중재가 진행됐습니다. 특히 이번 사후조정은 지난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최소 이틀에 걸쳐 진행될 예정입니다. 핵심 쟁점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첨예한 데다, 사회적·경제적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최대한 협상 시간을 확보해 조정안을 도출하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후 취재진을 만나 “(노사 양측이 오후부터는) 안을 가져올 것”이라며 “파업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주말에도 사전 미팅을 갖고 이번 협상을 준비했지만, 여전히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박 위원장은 ‘상황이 어떤지’를 묻자 “평행선”이라고 밝혔습니다.
전날에는 정부의 ‘긴급조정권’ 언급 이후 노사 양측의 갈등이 다시 분출되며 협상 시작 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습니다. 전날 최 위원장은 “정부의 긴급조정 언급 이후 회사의 태도도 변화한 것 같다”면서 “(사 측이) 긴급조정권을 시사하며 조합을 압박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성과급 둘러싼 입장 차 ‘여전’
우여곡절 끝에 노사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됐지만, 실제 ‘극적 합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양측의 입장 차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는 까닭입니다. 노조는 현재 연봉의 50%인 성과급의 상한을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마련하는 지급안의 명문화, 그리고 성과급 체계의 투명화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사 측은 성과급 상한 50%를 유지하되 OPI(초과이익성과급)의 경우 영업이익 10% 또는 경제적부가가치(EVA)의 20% 안을 제안한 상황입니다. 또 DS 부문의 영업이익 200조원 이상 달성 시 OPI 외 별도로 영업이익의 9~10%를 재원으로 부문 6대 사업부 4로 성과급을 제시하고, 3년의 적용 기간을 거친 후 재논의하자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서울 삼성전자 서초 사옥. (사진=연합뉴스)
특히 노조 측은 성과급 상한 폐지를 비롯해 제도화·명문화·투명화 등의 핵심 쟁점 관철에 물러서지 않고 있는 반면, 사 측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노사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돼 박 위원장의 중재에도 합의점을 쉽게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긴급조정·가처분…커지는 외부 압박
다만, 정부의 ‘긴급조정권’ 언급과 법원의 가처분 신청 일부 인용 등은 노사 협상을 둘러싼 외부의 압박은 노조의 파업 동력을 약화시킬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질서를 채택한 대한민국에서는 기업만큼 노동도 존중돼야 하고, 노동권만큼 기업 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는 글을 올려 노조를 에둘러 겨냥했습니다. 또한 앞선 17일 김민석 국무총리도 대국민 담화에서 “삼성전자 파업으로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부는 국민 경제 보호를 위해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수원지법 민사31부는 이날 삼성전자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습니다. 정당한 쟁의행위라도 안전보호 시설과 보안 작업이 실질적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채무자(노조)들은 쟁의행위 기간 중 안전보호 시설이 평상시(평일 또는 주말·휴일)와 동일한 정도의 인력, 가동 시간, 가동 규모, 주의 의무로써 유지·운영 되는 것을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거나 소속 조합원들에게 그와 같은 행위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법원이 사실상 사 측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노조의 파업 방식에 법적인 제약이 가해진 셈입니다.
이와 관련 최기영 반도체공학회 회장은 “최소한 공정 진행 중인 웨이퍼 등의 손상 우려로 인해 최소 인원을 유지하도록 조치한 판결인 것 같다”며 “그러나 웨이퍼가 멈춰서 생기는 생산 차질과 같이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만 연구개발(R&D) 시간이 늦어지는 등 무형의 피해까지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하지만 노조는 이번 판단이 사실상 쟁의행위를 제약하는 판결이 아니기에 예정된 총파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초기업노조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마중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안전보호시설과 보안작업의 존재와 필요성은 노조도 인정하는 취지였다”면서 “이번 결정으로 ‘주말 또는 연휴 인력’ 근무가 가능해 7000명 보다 적은 인력이 근무하게 돼 사실상 쟁의행위에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법원의 결정을 존중해 21일로 예정된 쟁의 활동을 할 것”이라며 “또한 현재 진행 중인 노사 협상에도 타결을 목표로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지평은 “법원은 쟁의행위 전의 평상시 근무와 동일한 정도의 인력이 동일한 가동 시간, 가동 규모, 주의 의무로써 해당 업무를 계속할 것을 명한 것”이라며 “'주말·휴일 수준 인력을 유지하면 된다'는 초기업노조 및 소송대리인의 주장은 가처분 결정에 위반하는 해석”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배덕훈·안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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