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이 ‘비방죄’?…유권자 입 막는 선거법 251조의 역설
헌재서 '일부 위헌' 결정받은 '후보자비방죄'
국회 정개특위, '문제 문구'만 수정키로 합의
시민단체 "독소조항 폐지…선거법 개선 필요"
2026-04-15 17:40:23 2026-04-15 17:54:52
[뉴스토마토 김백겸 기자] 6·3 지방선거에 적용될 개정 공직선거법 처리 시한(17일)이 다가왔지만, 국회가 위헌 결정을 받은 '후보자비방죄'를 문구만 살짝 바꾸는 ‘꼼수 개정’으로 유지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그동안 후보자비방죄는 후보에 대한 정당한 비판마저 가로막아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논의 중인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헌법재판소가 문제로 삼은 단어만 수정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에 독소 조항인 후보자비방죄 자체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이 나옵니다. 
 
9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외벽에 9회 지방선거 투표 참여 홍보 현수막이 게시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15일 국회 등에 따르면, 정개특위 1소위원회는 지난달 말 후보자비방죄를 규정한 선거법 251조에서 비방 금지의 대상으로 기존의 '후보자가 되려고 하는 자'를 '예비후보자'로 개정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선거법 251조는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에 대한 사실을 적시해 비방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의 형사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선거법 안에서도 모순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선거법 58조엔 선거운동을 '당선되거나, 당선되게 하거나, 당선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선거법에서 낙선을 목적으로 한 행위도 선거운동으로 규정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는 겁니다.
 
후보자비방죄로 인해 경쟁 후보는 물론 유권자도 후보자에 대한 검증과 비판을 제한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대학생이었던 전모씨는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정몽준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 '미개한 국민들'이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것을 비판하면서 정 전 의원의 후보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SNS에 썼다가 후보자비방죄로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전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일반 유권자가 일상적인 SNS 공간에서 후보를 비판하는 것도 선거법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이에 헌재도 지난 2024년 6월 선거법 251조에 대해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비방 금지 대상에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하는 부분이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헌재는 당시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에 대한 비방마저 처벌한다면 고소와 고발이 남발될 것"이라며 "비방 내용이 사실임에도 선거법에서 규제하는 것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헌재는 해당 위헌소원에서 심사 범위를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에 대한 비방' 관련 조항으로 한정했지만, 후보자비방죄의 근본적인 문제인 '비방을 선거법으로 처벌하는 것'에 대해서도 기본권을 제약한다는 판단을 내놓은 겁니다.
 
그럼에도 정개특위는 헌재가 지적한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두고, 문제가 되는 자구를 단순히 '예비후보자'로 수정하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이에 국회의 '꼼수 개정'으로 후보자비방죄로 인한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는 반복될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유성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이화여대 교수)은 "헌재의 일부 위헌 결정 취지는 이 조항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니 이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하라는 것"이라면서 "그런데 그냥 문구 하나만 바꿨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건데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한국과 달리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후보자비방죄를 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은 공직선거 후보자에 관한 사실을 적시하는 것은 공익적 목적 여부를 불문하고 처벌하지 않고 있습니다. 독일 선거법은 독자적인 처벌 규정이 없습니다. 미국 연방법도 선거 운동 과정에서 후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 대한 처벌 조항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선거에서 흑색선전이 만연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후보자비방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형법 307조)로도 처벌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형법상 명예훼손죄, 독일 역시 형법상 비방죄로 처벌 가능하며, 미국은 명예훼손 행위를 민사적으로 구제하고 있습니다. 
 
특히 선거법상 후보자비방죄는 3년 이하 징역에 처해지는데,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2년 이하 징역보다 처벌 수위가 높아 형평성 문제도 나옵니다. 더구나 선거법 위반 혐의로 100만원 벌금 이상의 처벌을 받으면 피선거권 박탈, 당선 무효 등 권리도 제한됩니다. 만일 후보자가 비방죄로 처벌을 받는다면 아예 공론의 장에서 퇴출당하게 되는 겁니다. 
 
국회에서도 후보자비방죄 등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지난 2024년 11월 박희승 민주당 의원은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허위사실공표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을 트집 잡은 국민의힘의 반대로 법안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선거법이 규제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유 소장은 "한국의 선거법은 선거운동 자체는 굉장히 폭넓게 정의하고 있는데 그것을 특정한 기간, 특정한 사람들 외에는 할 수 없게 해놨다"면서 "선거법에 규정된 것 외에는 선거법 위반으로 만들어놔서 선거운동의 자유가 굉장히 제한돼 있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김백겸 기자 kb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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