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컴백 공연의 또 다른 주인공은 '넷플릭스(Netflix)'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컴백 공연은 전 세계 190개국에 송출됐고, 당일 시청 인원은 무려 1840만명에 달했다. 무엇보다 넷플릭스가 공연 첫 생중계임에도 안정적인 스트리밍을 구현하고, BTS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통의 아름다움을 다채롭게 소개한 점도 호평받았다.
비단 이번 BTS 공연을 떠나 넷플릭스는 최근 수년간 우리 문화 콘텐츠 산업의 대대적 변화를 이끈 대표적 채널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는 고사하고 아시아에서도 변방 콘텐츠 정도로 여겨졌던 우리나라의 드라마 및 영화는 이제 더 이상 국내 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 시청자들과 동시에 호흡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제작자들의 창작 환경도 예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지고 있다. '기회의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사실상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우리 주요 미디어 콘텐츠들의 제작은 국내에서 이뤄질지 몰라도, 유통 및 소비 주도권은 사실상 플랫폼으로 넘어가고 있어서다. 어떤 작품이 노출되고, 어떤 스토리가 선택되는지는 이제 알고리즘과 데이터베이스(DB)에 의해 좌우된다.
이는 곧, 문화 선택 및 기준이 글로벌 시장과 취향에 종속됨을 의미한다. 오히려 우리 사회 내부의 고유한 스토리, 다양한 목소리 및 실험적 시도는 철저히 알고리즘에 의해 설 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
더 큰 문제는 미디어 산업 전반에 걸친 종속화다. 국내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에 더욱 의존하게 되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국내 미디어 산업의 동력을 떨어뜨려 산업 구조 자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플랫폼은 사실상 자본과 유통을 장악하고, 제작사는 콘텐츠 공급자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얼핏 협업으로 보일진 몰라도 실질적 협상 구조는 매우 비대칭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 같은 미디어 주권 약화는 단순히 산업 테두리 내에 머물지 않는다. 국가가 미디어를 통한 정보로 국민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전통적 공식은 이제 국경을 초월한 플랫폼 앞에 점점 무너지고 있다. 국가 정책이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데 따른 결과다.
그렇다고 넷플릭스를 경원시하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다. 이미 글로벌 플랫폼은 우리의 일상이 깊게 침투했고, 우리 산업 역시 이에 대한 상당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밸런스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력을 유지하되, 우리 미디어 산업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지킬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계약 구조, 국내 플랫폼의 자생력 강화 토대 마련, 문화 다양성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적 상상력 등이 요구된다.
넷플릭스의 질주를 이제 단순한 글로벌 기업의 성장 서사로 볼 시기는 지났다. 넷플릭스가 세계 미디어의 추요 축을 넘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설계자가 된 지금, 우리가 이 같은 흐름에서 무엇을 잃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 미디어 스토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순간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미디어 주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 번 악화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가치인 까닭이다.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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