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대대적 공습 가능성을 거론하고, 이에 따라 다른 국가들에 미국산 원유 수입을 언급하면서 국내 정유업계 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국내 정제시설이 중동산 중질유 처리에 맞춰 설계된 데다, 설령 미국산 경질유를 들여와도 수익성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라이베리아 국적의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후 인도 뭄바이항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관련 대국민 연설에서 동맹국과 주요 수입국들을 향해 미국산 원유 구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을 합친 것만큼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며 “다른 국가들에게 미국산 원유를 수입하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지난해 한국의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이 약 70% 수준에 달하는 데다, 국내 정유업계 설비 대부분이 중동산 중질유 처리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 86%에 달하던 의존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경제성 측면에서 이를 단기간에 크게 줄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내 정유사들은 그동안 운송 거리가 가깝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동산 중질유를 들여와 고부가가치 석유제품으로 가공·수출해 왔습니다.
반면 미국산 원유는 경질유 비중이 높아 국내 정유사 기존 설비와의 적합성이 떨어집니다. 정제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중동산 중질유 중심으로 설계된 설비 특성상 수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국내 산업구조상 경유 수요가 큰데, 중질유가 경질유보다 경유 생산에 더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경제성 문제도 있습니다. 중동보다 미국의 운송 거리가 길어 물류비 부담이 큽니다. 게다가 정유업계는 최근 친환경 에너지 전환 흐름에 대응해 정유 부문을 줄이고 신사업 등 사업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정제 설비 전환에 수조원대 자금을 투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업계는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비해 미국산을 포함해 수입선 다변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중동산 원유가 국내 설비에 더 적합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입에 차질이 생길 경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공급선 확보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원유 수입에서 미국산 비중은 2016년 0.21%에 불과했으나, 2018년 5.3%로 상승한 뒤 지난해 16.3%까지 확대됐습니다. 또 캐나다산 중질유에 대해서도 꾸준히 시험 가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산 원유 도입 확대 움직임이 한층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중동발 수급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이에 대한 대응 속도를 더 높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중동산 원유 수입을 아예 중단할 순 없지만, 미주·호주·아프리카 등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해 의존도를 점차 낮춰갈 것”이라며 “미국산 원유와 중동산 원유를 혼합해 사용하는 방식 등을 통해 수급 불안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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