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공기관 지방 이전 논의가 불붙을 조짐을 보이면서 금융권 긴장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024110) 등 국책은행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 농협·수협까지 이전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데요. 실효성에 대한 논의 없이 포퓰리즘 공약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4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수도권에 남아 있던 기관의 지방 이전 여부를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산은과 수은은 부산, 기은 전북 또는 대구, 농협은 전남, 수협은 부산 또는 전남, 금감원은 강원도 원주 등으로 이전설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한국투자공사(KIC)의 경우 부산이나 전북 이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들 기관에는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 명의 인원이 본점에 근무하고 있는데, 문제는 단순 이전만으로는 지역 균형 발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전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은 직원은 약 1만3000명의 임직원 중 2000명이 본점에 근무하고 있고, 산은 직원은 약 3400명 중 1500명 안팎이 본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약 2200명, 농협중앙회 약 1000명, 수은 약 800명, 한국투자공사 약 350명 등입니다.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지방 이전 논의가 부상하면서 금융권 전반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 내부로 직원이 들어가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수천명 옮기는 실효성 논의 실종
금융권 내부에서는 기관을 지방으로 떼어 보내는 방식으로는 금융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지방 활성화를 이루려면 금융사와 유관기관, 인력이 함께 모여야 한다"면서 "기관 하나만 내려보내는 방식으로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금감원 이전설을 두고는 비효율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감독 대상인 금융사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감독기관만 지방으로 이동할 경우 업무 효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이전설은 시기상조라면서도 분위기가 어수선합니다. 평일만 근무하고 주말이면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5일제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여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핵심 인력 이탈 가능성을 가장 큰 리스크로 꼽습니다. 실제 산은 부산 이전 논의가 본격화됐던 시기에 주요 인력들이 민간 금융사나 다른 기관으로 이직을 검토하거나 실제 이동한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전 얘기가 나오면 인력부터 움직인다"며 "지방으로 내려가기보다 이직을 선택하는 흐름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도 "준비 없이 이전을 추진하면 결국 경쟁력 있는 인력부터 빠져나간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공공기관 이전이 실질적인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관 간 집적과 정주 여건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금융사와 유관기관이 한곳에 모여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교육·의료·문화 인프라와 일자리까지 함께 구축해야 인력 유입과 정착이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은 네트워크 효과와 정보 공유 효율성이 핵심 경쟁력인 산업"이라며 "감독기관과 정책금융기관을 전국으로 분산하면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관치 리스크가 커져 금융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방 이전이 단순한 소재지 이전에 그치면 '두 집 살림' 구조와 인력 이탈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가족 동반 이주가 어려운 인력을 중심으로 정착률이 낮아지고 주말 공동화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국책은행 설립법 개정까지 추진하면 금융정책이 단기·지역 이슈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 "정책 일관성이 흔들리고 국제 투자자 신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공공기관 이전은 법 개정이 필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산은과 기은 등 국책은행은 설립 근거법에 본점 소재지를 '서울특별시'로 명시하고 있어 이전을 추진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금감원 역시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25조에 따라 금감원의 주된 사무소를 서울에 두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전을 위해서는 해당 조항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정치권은 지역 균형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금융기관 이전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금융권 내부에서는 선거를 의식한 접근이라는 시각도 나옵니다. 한 정책금융기관 관계자는 "설립법 개정은 정부 의지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국회 동의가 필요한 절차"라며 "정치권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논의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서 교수는 "국책은행 설립법 개정은 금융 정책의 단기·지역 편향성을 초래해 장기 일관성 훼손과 국제 신인도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법 개정 강행 시 노사 갈등·기능 저하 우려가 크며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안정성 평가에 부정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2023년 9월12일 금융산업노조 산업은행지부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은행 부산 이전 관련 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규탄하고 있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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