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당·정이 농협중앙회장의 권한을 분산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농협 개혁 방안'을 발표했지만 선거제·경제사업 등 핵심 쟁점은 여전히 남습니다. 이번 개혁안이 '중앙회장 권한 과도'에 쏠린 반면, 조합원 직선제·선거인단제 구체화와 농민 실익을 위한 산지 가격 보장 등 경제사업 활성화 방안은 후속 과제로 유보했기 때문입니다. 선거제와 달리 농협 개혁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인 '경제사업 활성화' 과제는 9월 정기국회 전까지 예고한 만큼, 농협 본연의 정체성을 얼마나 회복할지 사실상 2단계 추진 과정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입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농업협동조합 개혁안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앙회장 '황제 권한' 차단
민주당과 정부가 11일 발표한 농협 개혁안은 '중앙회장 권한 분산'과 '내부통제 강화'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기존 중앙회 내부 기구였던 감사 기능을 분리해 농식품부 제청·대통령이 위원장을 임명하는 '농협감사위원회'를 신설키로 한 겁니다.
감사위는 독립법인으로 위원장 1인을 포함한 7인 체제 감사위로 운영합니다. 중앙회장의 자회사 경영 개입과 겸직은 금지됩니다. 금품 선거 공소시효는 6개월에서 3년으로 늘리고 형사처벌 징역의 경우 5년·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합니다.
비위 발생 땐 1심 유죄 판결·최종심(대법원) 확정 전에 즉시 직무를 정지할 수 있는 견제 장치도 마련합니다. 현행 농협법 제164조는 장관의 직무정지 권한이 명시돼 있지만 법령이 모호해 소송 리스크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예컨대 새마을금고는 행정안전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공적 금융기관의 성격이 짙어 검찰의 '기소'만으로도 직무를 정지한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합원이 중심인 협동조합은 자율권 침해 우려 등을 고려하다 보니 정부 개입이 '보충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따릅니다. 따라서 3심 확정까지 수년이 걸리는 만큼, 비위 인사가 계속 경영권을 행사하는 폐단은 1심 유죄 선고에서 막기로 했습니다.
강호동 현 회장에 대한 직무정지 적용 가능성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이와 관련해 윤원습 농식품부 농업정책관은 "농협은 기본적으로 조합원이 중심이 돼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으로 정부의 개입은 '보충적'이어야 한다"며 "감사 결과와 수사 진행 경과 등 과정들을 충분히 지켜보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판단하겠다고 그렇게 이해해 달라"고 답했습니다.
사실상 '통치 자금'처럼 활용하던 무이자 회원조합지원자금에 대해서도 제동을 겁니다. 강 회장은 20조원 규모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나 농식품부 보고를 의무화하는 등 재무 건전성을 우선 고려토록 했습니다.
이는 자의적인 자금 살포를 막고 중앙회의 재무 상황을 수치로 관리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인사 남용 우려와 관련해서는 공정성을 위해 인사추천위원회에 참여하는 외부 위원 비중을 늘립니다. 중앙회와 조합의 경영 정보는 조합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1인 정보공개청구권'을 신설합니다.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농협 정부합동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등을 경찰에 수사 의뢰한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조합원 직선제·선거인단제 '고심'
하지만 권한 과도에 대한 외형적 수술과 달리 핵심 쟁점인 선거 제도·경제사업 활성화의 구체적 내용은 유보한 상황입니다. 이 중 선거제도 개편은 204만 조합원 전체가 투표하는 '조합원 직선제'와 무작위 추출 방식을 활용한 '선거인단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장단점이 분명한 만큼, 내부적으로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특히 조합원 직선제의 경우 기존 1110명 조합장에서 204만2442명(2025년 말 기준) 조합원으로 유권자가 약 1840배 폭증합니다. 당장 '관리 비용'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제기되는 부분입니다.
선거인단제에 대한 고심도 '소수에 의한 선거 왜곡' 가능성을 완벽히 차단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 선거인단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후보자에 매수 대상이 되거나 특정 세력에 포섭되지 않도록 무작위, 비밀 보장 등의 정교한 장치가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윤 농업정책관은 "방법론과 관련해서는 조합원 직선제 방식, 선거인단제 등 여러 가지 안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이번에 확정을 짓지는 않았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조합원 직선제는 비용 등 여러 문제들이 발생할 소지가 있어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선거인단제 경우에도 선거인단 매수 부분 등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어 그런 부분들을 전반적으로 고민해 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정은 선거제와 관련한 개편안을 다음주 중 내놓겠다는 입장입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1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업무보고를 통해 "회장으로서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뼈를 깎는 쇄신으로 국민과 위원들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뒤로 밀린 경제사업 "통째로 바꿔야"
농협 본연의 목적인 '경제사업 활성화' 과제는 9월로 밀렸습니다. 정기국회 전까지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나 단순한 제도 수정을 넘어 실효적 재편이 나올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지배구조 개편이 외과 수술이라면 경제사업 활성화는 체질 개선인 만큼 전국 1110개 지역 농협과 204만 농민, 민간 유통기업까지 얽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속 불가능한 농촌 현실과 민생경제를 위한 실질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많습니다. 농민은 적게 받고 소비자는 비싸게 사는 구조를 바꿀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 협동조합 관계자는 "농민은 가난해지는데 농협은 배 불린다는 해묵은 비판이 이제는 지속 불가능한 농촌 현실과도 맞물려 있다"며 "농민, 소비자 등 민생경제를 위한 실질적 개혁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농협의 돈줄(재원)과 수익 구조를 통째로 바꿔야 하는 고난도 수술이 필요하다고 본다. 왜 농협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손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12월10일 제주시에서 농민들이 나물을 수확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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