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교보생명과 SBI홀딩스가 각각 스테이블코인 관련 행보에 나서자, 시장에서는 한·일 금융을 잇는 '브릿지 스테이블코인' 구상의 출발점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연합으로 시너지를 낼 것이란 관측입니다. 양측은 일단 연합 논의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테스트 참여와 엔화 스테이블코인 개발, 지분 협업 구조가 맞물리며 결제·송금·보험 등 용처 확장 가능성이 커진 상황입니다.
교보·SBI, 스테이블코인 시동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교보생명과 SBI저축은행 모기업 SBI홀딩스는 각각 스테이블코인 중심의 디지털금융 협업에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최근 교보생명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이 자체 개발한 블록체인 기반 테스트넷 아크(Ar) 파트너사로 참여한다고 밝혔습니다. 아크 테스트넷은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결제·환전·자본시장 거래를 지원하는 인프라로, 교보생명은 이를 통해 디지털자산 관련 사업 가능성을 사전 점검할 계획입니다.
SBI홀딩스도 일본에서 엔화 스테이블코인 행보를 본격화했습니다. SBI홀딩스는 글로벌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스타테일 그룹과 손잡고 일본 금융 규제를 준수하는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공동 개발·출시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전해졌습니다. 국내 금융권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준비에 집중하는 가운데, 교보생명과 SBI홀딩스는 한·일을 잇는 원화-엔화 연합 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특히 양사 간 지분 거래는 장기 협업을 전제로 한 락인(lock-in) 구조로 작용할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금융권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SBI홀딩스로부터 SBI저축은행 지분 50%와 1주를 2026년 10월까지 단계적으로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인수 대금 할인 대신 인수 완료 전까지 SBI저축은행 배당금의 70%를 SBI홀딩스에 지급하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기타오 요시타카 SBI홀딩스 회장은 글로벌 금융권에서 유명한 20년 지기 전략적 파트너로 오랜 기간 우군 관계로 손꼽힙니다. 벤처투자와 디지털금융 분야에서의 협력은 물론, SBI는 최근 교보생명과 어피니티 컨소시엄 간의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도 어피니티 측의 지분(9.05%)을 매입해 신 회장 지배구조 안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SBI홀딩스는 교보생명 지분을 20% 이상으로 늘려 신 회장(33.37%)에 이은 2대 주주로 올라설 전망입니다.
또 신 회장이 금융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며 은행 등 수신 기능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기타오 회장은 일본 규제 환경과 한국 내 사업 재편을 고려해 SBI저축은행 경영권을 넘기는 대신 배당 수익을 확보하는 주식스왑 성격의 거래를 수락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지분·신뢰 관계가 향후 스테이블코인 협업으로 확장될 여지를 남겼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일 연합 공식 논의 없다"
교보생명과 SBI그룹을 둘러싼 한·일 연합 스테이블코인 구상을 놓고 양측은 일단 공식 논의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지분 구조와 사업 포트폴리오를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 다양한 시나리오가 열려 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시장에서는 양사를 중축으로 한·일 통합 '브릿지 스테이블코인'이 현실화될 경우에 대한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가령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서클과 SBI, 유통은 SBI저축은행과 교보증권, 사용처는 교보생명과 일본 내 SBI 가맹점으로 이어지는 사업모델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가 대표적입니다. 발행부터 유통, 결제까지 스테이블코인 사업의 핵심 가치사슬을 양사가 직접 통제하는 구조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교보생명의 SBI저축은행 인수가 양측의 연합 스테이블코인 전략에 더욱 힘을 싣고 있습니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원화와 엔화 간 금융 서비스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기존 스테이블코인 활용 방식보다 훨씬 빠르고 저렴한 비용으로 한·일 간 송금과 결제를 처리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지분 인수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금 흐름에 활용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배당금 지급이나 인수 대금 결제 등에 스테이블코인을 적용하면 환전 비용을 낮추고 거래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나아가 원화·엔화 스테이블코인 유동성을 내부적으로 조절함으로써 환율 변동성을 자체 흡수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기존에는 원화를 엔화로 전환하기 위해 '원화→달러→엔화' 과정을 거치며 수수료가 중첩됐지만, 서클 전송망을 활용하면 원화 토큰과 엔화 토큰 간 직접적인 스왑 구조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사업 확장 측면에서도 긍정적입니다. 교보생명 보험 본업에 SBI 블록체인 인프라를 결합해 청구 절차 없이 보험금이 자동 지급되는 모델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이 2023년 세계 최초로 스테이블코인 규제안을 통과시킨 점을 감안하면 일본 규제를 준수하는 방식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국내에서는 금융당국 혁신금융서비스(샌드박스)를 통해 제도권 스테이블코인으로 확장하는 경로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스테이블코인 관련 입법이 활발히 진행 중인 상황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낮습니다.
현재 양사는 구체적인 연합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없으며, 제도화 이후 가능성을 검토하는 단계라고 밝혔습니다. SBI저축은행 관계자는 "SBI홀딩스가 교보생명과 연합 스테이블코인 전략을 논의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면서도 "SBI홀딩스가 오래전부터 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관심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교보생명 관계자도 "아크 테스트넷 참여는 디지털자산 법제화 이후를 대비한 사전 검토 단계"라며 "연합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 결정된 사안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 논의를 진행하는 가운데, 교보생명과 SBI홀딩스의 스테이블코인 전략에 대한 업계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ChatGPT 합성)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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