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경찰이 환자 280여명을 보험사기 혐의 공범으로 판단하고 검찰로 송치했는데,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하며 사건을 다시 경찰로 돌려보낸 걸로 확인됐습니다. 문제의 사건은 강남 A안과에서 안구건조증 치료와 피부미용 시술을 묶은 패키지 상품을 결제한 환자 280여명이 병원 안내에 따라 실손보험을 청구했다가 보험사기 혐의 피의자가 된 일입니다. 검찰은 환자들이 보험사기 혐의를 강하게 부정하며 증거 자료를 잇따라 제출하자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환자마다 상황이 다른데도 경찰이 A안과-다단계 화장품 업체 B사-환자들을 모두 보험사기 공범으로 '무리하게' 엮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전국 최대 지방경찰청인 서울경찰청 외관. (사진=연합뉴스)
15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9일 일명 '강남 A안과 보험사기 사건'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앞서 경찰은 10월 말 사건을 중앙지검으로 송치했으나 검찰은 한 달 반 동안 수사내용을 검토한 끝에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걸로 보입니다.
문제의 사건은 2023년 A안과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 이 병원은 안구건조증 치료(IPL 레이저 치료)와 피부 관리를 패키지로 묶어 판매했습니다. 환자에게는 안구건조증 치료를 받으면 피부 리프팅·톤업 시술 등 피부 관리도 해준다고 했습니다. 1회당 20만원 상당의 상품인데, 환자들에겐 10회씩(200만원) 묶어 판매됐습니다. 200만원을 한꺼번에 결제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환자들에게는 실손보험 청구가 가능하다고 달래면서 결제를 유도했다고 합니다. A안과가 영업을 하는 과정에는 다단계 화장품 판매 업체 B사의 프리랜서 노동자도 동원됐습니다. B사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해당 상품을 홍보했고 병원으로 환자를 연결했습니다.
광수단은 10월28일 강남 A안과 병원장과 A안과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 280여명에게 '보험사기방지 특별법'(보험사기방지법)과 의료법 등을 위반한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본지가 입수한 경찰의 송치결정서에 따르면 A안과 병원장은 B사 관계자들에게 환자 유치 역할을 맡기고, 그렇게 거둔 매출의 일부인 시술비의 20%를 브로커들에게 지급했습니다. 보험사기방지법 제8조(보험사기죄)에 의하면, 보험사기행위로 보험금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보험금을 취득하게 한 자 또는 보험사기행위를 알선·유인·권유·광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특수 콘택트렌즈를 실험자가 착용하고 있다. (사진=Yuqian Ma, Yunuo Chen, Hang Zhao 제공)
* 해당 사진의 내용은 본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장휘일 '더신사 법무법인' 변호사는 "(피의자가 된) 환자들 중 일부는 다른 병원에서 안구건조증을 진단받은 자료라든지, 2023년 무렵 내가 피부과에 다니고 있었다라든지 '뭐 하러 피부시술을 하려고 안과를 갔겠느냐'면서 억울하다고 입증을 하는 사람이 꽤 많아지고 있다"면서 "검찰로선 그런 주장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라고 보완수사를 내린 것 같다"고 풀이했습니다.
경찰로부터 이 사건을 받은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한 건 '무려 280여명이나 되는 환자들을 모조리 공범으로 보는 게 맞느냐'에 대한 의문이 크게 작용한 걸로 보입니다. 실제로 280여명이나 되는 환자들을 A병원장과 화장품 판매 업체 B사 관계자들과 함께 공범으로 볼 수 있을지는 논란거리입니다.
일단 경찰은 환자들을 병원장, 브로커와 같이 보험사기를 공모한 '공동정범'(2인 이상이 공동으로 범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찰이 검찰에 보낸 송치결정서에는 "피의자 병원장은 환자를 유치받아 병원 매출을 올리고, 피의자 브로커들은 피의자 병원장에게 환자 유치 대가로 시술비 20%를 지급받기로, 환자들은 피의자 병원장이 발부한 허위 보험금 서류를 통해 피부미용 시술비가 포함된 시술비 전액에 대해 보험금을 편취하기로 순차 공모했다"고 적시됐습니다.
'순차공모'란 범죄 실행이 이미 개시된 이후에, 제3자가 그 범행의 내용을 인식하고 사후적으로 범행 의사를 결합해 가담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경찰은 병원장과 화장품 업체가 먼저 보험사기를 공모하고, 환자가 이들의 범행 의사에 결합해(동의해) 보험사기를 저질렀다고 본 겁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병원장과 브로커, 환자가 공모를 했다는 게 경찰의 입장인데 공모관계가 불명확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의 경우 환자들은 보험사에게 실손보험을 청구하고, 돈을 직접 받은 당사자이기 때문에 정범이자 주모자로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하지만 사실관계를 보면 환자는 기껏해 방조를 했다고 봐야 한다. '병원장-브로커-환자'가 보험사기를 위해 역할을 분담했다는 것이 구체적인 증거에 의해 입증돼야 하는데, 그 부분이 부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환자들이 병원에서 권유한 패키지 상품을 결제하고 안구건조증 치료와 함께 피부미용 시술을 받았다고 보험사기를 칠 의사가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는 말입니다. 환자들이 병원-브로커와 보험사기를 공모하려면, 이들의 보험사기 의사를 알았어야 하지만 실제 사례를 보면 환자들은 병원과 브로커가 수익 창출을 위해 공모한 사실을 몰랐던 사례도 부지기수입니다. 심지어 일부 환자는 브로커가 병원 측 직원으로 알고 있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IPL레이저 시술은 안구건조증 치료뿐 아니라 피부미용 시술로도 활용되는 만큼, 피부미용 시술을 덤으로 받았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장휘일 변호사는 "환자들 상황을 보면 (보험사기로 처벌하기) 애매한 환자들이 많다"며 "도수치료 받는다고 실손보험 청구를 하거나 상안검 또는 하안검 수술을 하는 병원은 보험사기로 볼 수 있지만, IPL시술을 했다고 해서 그 자체로 불법으로 보긴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결국 사건은 다시 경찰 손에 쥐어졌습니다. 경찰이 '무리하게 환자들을 공범으로 엮었다'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개별 환자의 사례에 맞춰 적절한 법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광수단 측은 "(사건을) 조사할 때 (환자들에게) 자료를 충분히 받았다"며 "뒤늦게 자료를 갖다 준 분들이 있다. 받은 자료는 기존과 동일한 잣대로 판단하게 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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