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 과정에서 '먹튀'를 벌인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악연은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 절차에서 한국 정부가 승소하면서 정리되는 분위기입니다. 론스타에 따라붙는 '먹튀' 수식어는 2003년 외환은행을 편법으로 사들이고 9년 뒤인 2012년 수조원의 차익을 남기고 팔아넘긴 전 과정을 요약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한국 정부와 론스타의 악연은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던 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의 지분 51.02%를 1조3834억원에 인수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외환은행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줄곧 경영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현대그룹 부실채권 문제, 자회사 외환카드의 적자 문제 등으로 대규모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외환은행의 2대 주주였던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외환은행 증자를 포기하고 한국 정부와 함께 매각을 추진했는데, 이때 인수에 나선 곳이 바로 론스타였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2003년 외환은행 '헐값 인수'
하지만 론스타의 인수 자격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당시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국내 은행을 인수할 수 없었는데, 론스타는 일본에 골프장과 예식장 등 산업자본 계열회사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금융당국은 2003년 외환은행 자기자본비율(BIS)이 8% 밑으로 떨어져 부실이 예상되자, 은행법 시행령상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를 인정해 론스타의 인수를 승인했습니다.
그러자 이듬해인 2004년부터 '헐값 매각' 논란이 커졌습니다. 당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론스타의 산업자본 요건에 대해 금융당국이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고, BIS 비율이 고의로 낮게 보고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센터는 "론스타가 인수제안서를 제출한 이후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는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넘기려고 은행법을 확대 해석하고, 은행 주주 자격이 없는 사모펀드에 헐값을 받고 떠넘겼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듬해 론스타의 인수를 두고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 수가가 지속됐고, 론스타는 투자 자금 회수를 위해 외환은행을 되팔려는 협상을 계속했습니다. 2007년 론스타는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5조9000억원대의 매각 계약을 체결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관련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외환은행 재매각을 승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2008년 HSBC는 결국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했습니다.
최대주주 론스타가 막대한 이익을 배당으로 빼가면서 외환은행 경쟁력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었다. 지난 2011년 7월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 외환은행 노동조합이 론스타의 고액 중간배당을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경쟁력 훼손에도 대주주 고액 배당
금융위기 이후 국내 은행의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악화하는 가운데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가 막대한 이익을 배당으로 빼가면서 '빈껍데기'만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계속됐습니다. 사모펀드 특성상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장기적인 성장보다 투자금 회수에 급급했습니다. 금융당국도 고배당을 통해 외환은행 이익을 빼가는 데 제동을 걸었지만, 론스타 독주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론스타는 2010년 다시 매각을 시도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금융지주(086790)에 외환은행을 4조6888억원에 매각하려 했지만 한국 정부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판결 등을 이유로 승인을 미뤘습니다. 그러던 중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자회사이던 외환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감자설을 퍼뜨려 주가를 조작한 혐의가 인정돼 2011년 유죄 판결을 받았고, 금융당국은 이를 이유로 론스타가 대주주 자격을 잃었다며 6개월 이내 주식을 처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론스타는 결국 2012년 3조9156억원에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팔고 떠났습니다. 같은 해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 때문에 매각가가 낮아져 손해가 났다고 주장하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46억7950만달러(약 6조원) 규모의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ICSID는 2022년 8월 론스타 측 주장을 일부 인용해 한국 정부가 2억1650만달러(약 290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정했습니다. 배상금과 지연 이자 등을 모두 합하면 정부의 지급액 총규모는 현재 환율 기준으로 4000억원 규모에 달합니다. 한국 정부는 2023년 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정부는 이후 약 3년간의 추가 심리 끝에 결국 최종 승소했고, 이로써 약 4000억원에 달하던 부담이 사라졌습니다.
지난 2012년 2월17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하나금융지주, 외환은행 노동조합과 최종 합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당시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김석동 금융위원장, 김기철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윤용로 외환은행장, 추경호 금융부위원장. (사진=뉴시스)
'론스타 책임론' 두고두고 발목
론스타와의 악연에 금융당국 관료들도 홍역을 치뤄온 건 사실입니다. 매 정권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관련 승인에 관여했던 전·현직 관료들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했을 당시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는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으로 매각 과정에 관여했었고, 한덕수 전 총리는 론스타 법률대리인 고문을 맡고 있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2008년 론스타가 산업자본임을 자인했을 때 금융위 부위원장이었습니다.
2011년 하나금융이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 협상을 할 때 승인 등을 담당했던 금융위원회 고위직에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당시 위원장),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당시 부위원장), 김주현 전 금융위원장(당시 사무처장) 등이 있습니다.
그러던 금융당국은 ISDS 취소 절차에서 승소한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완승했다"고 자평했습니다. 당국은 "국제법적으로도 적법 절차의 원칙을 명확히 한 의미 있는 사례"라고도 했습니다. 일각에선 론스타가 적반하장으로 제기한 소송에서 돈을 물어주지 않게 된 건 다행이지만, 론스타가 먹튀를 통해 손에 쥔 막대한 수익을 환수할 길은 없다는 점에서 자화자찬할 일인지는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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