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금융당국의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이 시장 혼란을 키우고 있습니다. 10·15 부동산 대책으로 담보인정비율(LTV)을 70%에서 40%로 강화한 지 열흘도 안 돼 대환대출에 한해 예외를 허용했는데요. 전세퇴거자금 대출과 규제지역 오피스텔도 처음엔 LTV 40%로 묶었다가 뒤늦게 70%를 유지키로 하는 등 정책 번복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2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10·15 부동산 대책을 통해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규제지역의 LTV를 종전 70%에서 40%로 강화했습니다. 당시 대환대출(갈아타기) 역시 신규 대출로 간주돼 강화된 LTV가 적용됐습니다. 그러나 불과 아흐레 만인 24일 금융위는 "증액 없는 대환대출은 기존 대출 취급 시점의 LTV를 그대로 적용한다"고 방침을 뒤집었습니다. 차주의 이자 부담을 낮추는 대환대출까지 막았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자 정책을 급히 수정한 겁니다.
이를 두고 시장 안팎에선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 "실수요자 반발로 급히 뒤로 물러섰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 기조 속에서 강경 규제가 먼저 나가고, 시장의 싸늘한 반응이 나오면 뒤늦게 완화하는 흐름을 또다시 반복했다는 비판도 쏟아졌습니다.
금융당국의 부동산 대책이 진입장벽을 높인 강경 규제로만 초점이 모아지면서 시장의 거래량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10·15 대책 발표 다음 날인 16일~25일(열흘 간) 서울 아파트 매매계약 건수는 564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실거래가 반영이 계약일로부터 30일까지 가능해 완전히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직전 열흘간(10월6일~10월15일) 2679건과 단순 비교하면 78.9% 급감한 수치입니다.
후폭풍은 고스란히 실수요자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규제 목적은 투기 억제인데 오히려 실수요자의 진입장벽만 높아지고 기회는 줄었기 때문입니다. 예측 가능성이 없는 규제 속에서 대출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원성도 터져 나옵니다. 금융당국의 심사 지침이 바뀌면 은행 내부 프로세스가 지연되고, 차주는 더 불리해진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결국 부동산 관련 금융정책이 방향성 없이 반복적으로 강화·완화되면서 정책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게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윤한홍 정무위원장은 지난 26일 정무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에게 "10·15 대책은 시장과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 정책이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대출 규제를 갖고 말이 왔다 갔다 했다"며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장관 5명이 앉아서 발표한 게 아귀가 안 맞는다"고 당국 간 소통 부재를 질타했습니다.
윤 위원장은 "대출 갈아타기도 LTV 40%로 강화됐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다시 정정했고, 전세퇴거자금 대출도 40%로 강화된다고 했다가 70%로 다시 환원됐고, 생애 최초 주택 구매도 혼선을 빚었다가 다시 정정했다"면서 "정부가 내놓은 정책 발표 내용이 한 페이지 안에서도 앞뒤가 안 맞는데 국민들이 뭐라 보겠는가. 정책의 신뢰성이 없는 건데 10·15 대책이 효과가 나오겠느냐"고 질타했습니다.
거래가 급감하면서 현금 부자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는 왜곡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용이나 대출을 활용해 진입을 시도했던 실수요자는 발목이 잡히고, 현금 여력이 풍부한 투자 세력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진 게 최근 부동산 시장의 상황입니다. 이 과정에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나 LTV 등 대출 규제가 풀리거나 강화하기를 반복하면서 실수요자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시장에 '정책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키우고, 다시금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뀐다'는 심리를 유발해 부동산 시장의 생태계가 악순환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시장에선 이번처럼 미흡한 설계에 따른 과잉 규제가 반복되면 실수요자의 진입 기회가 더욱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부동산 규제와 관련한 금융정책이 강경 일변도로 흐르는 데 대해 "중산층의 주거 이동성까지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며 "정부는 투기 억제와 실수요 보호의 균형점을 정교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