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태은 기자] 내수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였던 한국은행이 부동산과 환율이라는 두 변수를 만나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불장(불붙은 장세)' 조짐이 확산하면서 부동산 시장 과열 우려가 커졌고, 한·미 관세 협상 불확실성 속에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로 치솟는 등 대외 여건도 악화한 탓입니다. 한때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인하 행보에 맞춰 한은이 금리 인하에 나설 수 기대감이 형성됐지만, 부동산과 환율이라는 이중 부담에 가로막히며 연내 인하 시점은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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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수도권 집값…1430대 돌파한 환율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이 오는 23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 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2.5%에서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은 한풀 꺾였습니다.
당초 시장에서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지난 9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한국은행도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한·미 기준금리 차가 1.75%포인트로 줄어들면서 한은의 통화정책 운신 폭이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국내적으로도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의 목표치인 2%대 안팎을 유지하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커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서울 마포구, 성동구 등 '한강 벨트'와 경기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주택 가격 상승세와 원·달러 환율 급등세가 맞물리면서 금통위의 금리 인하 명분은 약화했습니다. 서울 집값은 35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6·27 대출 규제 시행 이후 상승폭이 둔화했던 서울 아파트값은 정부의 9·7 공급 대책 발표 이후 다시 4주 연속 오름 폭을 키우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5주(29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직전 주(9월22일 기준) 대비 0.27% 상승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리 인하로 시중 유동성이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면 '불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은 금통위 위원들은 지난 8월에도 서울 일부 지역의 주택 가격 상승과 기대 심리 확산, 환율 등에 대한 우려로 금리 동결을 결정한 바 있습니다.
대외 변수도 부담입니다. 한·미 관세 협상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데다 미·중 무역 갈등까지 재점화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급등세를 보였습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425.8원)보다 5.2원 오른 1431원에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이는 지난 4월29일 1437.3원을 기록한 이후 5개월여 만의 최고치입니다.
전날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를 비판하며 다음 달 1일부터 중국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환율은 장중 1430원을 돌파했습니다. 이에 외환당국은 약 1년6개월 만에 시장이 개입하겠다는 메시지로 환율 흐름을 조절하는 '구두개입'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중국 상무부가 이날 한화오션 산하의 미국 자회사 5곳을 겨냥한 제재 소식이 알려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로 다시 올라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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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환율이 금통위 발목"…추가 부동산 대책은 '변수'
전문가들은 이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낮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최지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10월 금통위는 소수의견 없는 만장일치 동결과 3개월 내 인하 포워드 가이던스(통화정책 사전예고) 수의 소폭 감소(8월 5인→10월 3~5인)를 전망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우리는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 폭을 전주 대비 0.1% 이하로 계속 묶을 수 있다면 한국은행이 10월에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6·27 대책 직후 크게 둔화했던 서울시 송파구·마포구·성동구·광진구 등 한강 벨트 지역 가격이 9월 셋째 주부터 본격 반등하기 시작하며 서울 및 수도권 전체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 폭이 커지고 있다"며 "이에 당사는 10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낮췄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금리 인하가 늦어지고 있어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민생회복 소비쿠폰 영향으로 경기가 살아나는 분위기를 유지하려면 추가 대책이 필요한데, 서울 지역 부동산 가격과 환율이 금통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허지수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도 "주택가격이나 외환시장 불안 등을 고려해 이달 금통위에서는 동결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11월 마지막 금통위에서 현시점 기준 24bp 인하를 한 차례 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는데, 곧 발표될 부동산 대책 결과 등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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