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 30대 직장인 A씨는 롯데카드 해킹 사태 이후 불안한 마음에 꼭 필요한 카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해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해지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카드사 앱에서 '카드 해지' 버튼을 찾기 어려워 검색 기능을 통해 겨우 찾았는데요. 해지 버튼을 누르자 "3영업일 이내에 상담사가 전화를 드릴 예정이니 꼭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안내가 떴습니다. 신속히 해지를 진행하고자 직접 고객센터에 전화했지만 긴 대기 시간 끝에 상담사 연결에 실패했습니다. 결국 A씨는 카드사 상담사의 전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 롯데카드 해킹 사태 이후 불필요한 카드를 모두 해지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드사들이 신용카드 발급은 손쉽게 해주면서도 해지 절차는 복잡하게 만들어 소비자 불만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당 카드사의 카드를 한 장만 보유한 고객은 단순 해지가 아닌 '회원 탈퇴'로 처리돼 카드 해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카드사 회원 탈퇴 시 '방어콜'
13일 여신업계에 따르면 국내 카드사들은 카드 해지 절차를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먼저 '카드 해지'는 해당 카드사의 회원 자격은 유지한 채 보유 중인 개별 카드만 해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한 카드사에 세 장의 카드를 이용 중이라면, 한 장을 해지하더라도 회원 자격과 나머지 두 장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여러 카드를 보유한 경우에는 '카드 해지'로 분류돼 비교적 간편하게 카드 해지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 카드사에서 카드 한 장만 사용하고 있는 고객이 해지를 하는 경우에는 '회원 탈퇴'로 분류합니다. 해당 카드의 이용 자격을 포기함과 동시에 카드사에 보관된 모든 개인정보 삭제를 요청하는 절차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디, 비밀번호, 개인정보, 부가서비스, 적립 포인트 등이 모두 소멸됩니다. 카드사는 탈회 시 연회비 환불, 포인트 소멸 등 주요 확인 사항을 안내해야 하므로 상담사를 통해서만 해지를 진행합니다.
이러한 탈회 과정에서 소비자 불만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카드사 고객센터는 대기 시간이 길뿐만 아니라 해지와 같은 주요 절차는 평일 낮 시간에만 진행할 수 있어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담사 전화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기 때문에 전화를 받지 못하면 해지를 못 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본인 카드 해지조차 카드사 허락을 받아야 하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A씨는 "카드 포인트가 없어지는 걸 알면서도 진행하는 게 카드 해지 절차인데 내 마음대로 해지도 못 하게 만들어뒀다"면서 "내 카드를 내가 없애겠다는데 3일간 전화를 기다려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어 "신용카드 발급은 전화도 없이 바로 해주면서 탈퇴하자니 발목을 붙잡는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소비자는 "탈회 시 상담사가 전화를 거는데 연회비 환불이나 포인트 소멸 안내가 아니라 사실상 해지하지 못하도록 설득한다"며 "혜택을 주겠다고 카드를 해지하지 말라는 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일부 카드사는 탈회를 요청한 고객에게 "일정 금액 이상 사용 시 캐시백을 제공한다"는 등 문자를 보내며 해지 의사를 번복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여신업계 관계자는 "카드 해지와 탈회는 다르게 구분하는데 탈회를 진행할 경우 상담사가 안내하도록 지침이 되어있다"며 "탈회를 카드 해지처럼 간편하게 한다면 포인트 등이 본인도 모르게 소멸할 수 있어 충분히 안내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꽁꽁 숨은 해지 버튼
카드사들이 자사 앱 내에서 카드 해지 버튼을 눈에 잘 띄지 않게 배치한 것도 소비자들의 불편을 초래합니다. 특히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고객들의 어려움이 더욱 큰데요. 일부 카드사 앱은 '카드 해지'를 검색해도 관련 메뉴가 표시되지 않고, 여러 단계를 거쳐 정해진 경로로 들어가야만 해지 버튼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BC카드 등 8개 전업 카드사 및 여신금융협회를 소집해 카드 해지 절차 개선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롯데카드 해킹 사태 이후 카드 해지가 너무 복잡하다는 소비자 민원이 급증하자 금감원이 직접 나서 카드사에 신용·체크카드 해지 절차 간소화를 주문했습니다.
카드사들은 카드 해지 신청 메뉴를 홈페이지나 앱의 초기 화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여신협회는 공통 매뉴얼을 마련해 모든 카드사에 단계적으로 적용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카드 해지 간소화 문제는 10년 넘게 반복돼온 고질적인 문제로 근본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소비자 불편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카드 해지가 간소화되더라도 탈회 절차는 여전히 상담사 통화를 거쳐야만 완료되는 구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장만 발급받은 고객들은 여전히 복잡한 해지 절차에 불편을 겪어야 합니다. 여신업계 다른 관계자는 "탈회는 일반 카드 해지와 달리 혜택과 개인정보 처리 등 고려할 사항이 많아 상담사 통화가 불가피하다"며 "소비자들이 카드 해지 과정에서 불편을 겪지 않도록 절차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진은 한 소비자가 카드 해지 전화를 한 이후 카드사에서 받은 캐시백 이벤트 문자 내용.(사진=소비자 제공)
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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