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정부 들어 기업들을 옥죄는 법안이 잇달아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파급력이 큰 법안은 세칭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입니다. 개정안의 핵심은 두 가지로 사용자의 범위를 원청기업으로 확대(제2조)하고, 파업에 따른 노조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제3조)하는 것입니다.
노란봉투법이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3월10일부터 시행되면 원청기업인 대기업 상대로 수많은 하청기업 노조들이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파업을 할 것이라는 우려가 큽니다. 특히 자동차, 조선, 건설 등과 같이 도급 계약 관계가 복잡하고 하청기업이 많은 산업은 일 년 내내 파업에 시달려 정상 조업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합니다.
노란봉투법을 지지하는 노동계는 원·하청의 수직적 구조하에서 하청기업의 노동조건에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지배력을 갖는 원청 대기업이 교섭 대상자로 나서야 열악한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정부는 노란봉투법이 대·중소기업 노동시장 격차를 완화하고 원·하청 노사가 상생하여 전체 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노란봉투법은 한국의 특수한 기업 거래 관행인 하도급 관계 배경에서 도입되었습니다. 하도급 관계는 최종재를 생산하는 도급 기업(원청기업)이 중간재의 생산을 하도급 기업(하청기업)에 위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기업은 완제품을 생산해 시장에 판매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완제품에 맞는 부품과 반제품을 생산해 대기업에 공급하는 협력 관계를 통해 서로의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의 수출로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한국적 산업 구조에서 하도급 거래는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문제는 하도급 관계의 양면성에 있습니다. 긴밀한 협력 관계는 중소기업의 대기업 의존성을 높여 협상력이 비대칭적으로 됩니다. 흔히 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는 것이지요. 중소기업은 대기업에게 종속되고 지배되며 권익을 침해당하게 됩니다. 대기업은 불균형한 힘의 관계를 악용해 비용과 위험은 하청 중소기업에 전가하는 반면 이익과 혜택은 독식하는, 불공정 거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원가절감(CR, Cost Reduction)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기업이 납품 단가 인하를 압박해 중소기업의 수익성을 갉아먹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원청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에 위험을 전가한 결과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당연히 중소기업의 수익성은 낮아져 기술과 인력에 대한 투자를 못 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중소기업이 인력난에 시달리는 근본적인 원인도 임금 수준이 낮아 인재가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취업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노동자가 저임금에 시달리며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임금 격차를 해소하며 대·중소기업의 진정한 상생 협력이 구현되는 결과를 유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하도급 거래 구조를 현행처럼 유지한 상태에서 관계만 개선될 것이라고 희망하는 것은 너무 낙관적 전망이라 봅니다.
오랜 시간 고착된 하도급 거래는 다층적으로 진화해 대기업에서 중견기업, 중소기업, 소기업으로 이르는 원·하청 구조가 강고합니다. 단지 노란봉투법 하나만 시행한다고 구조적으로 누적된 불균형과 불평등이 시정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구조가 변해야 관계도 개선될 수 있는 것입니다.
노란봉투법은 한국형 하도급 거래 구조의 변화를 촉발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 전망합니다. 대기업들이 노란봉투법에 대응하는 방안은 크게 세 가지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업장이나 공급망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해왔고 앞으로도 가속화할 것입니다. 그러나 해외 이전만으로 모든 공급망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또한 노란봉투법에 대한 근본적 대책은 기존 협력 기업과의 관계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 방향은 내부화하거나 시장화하는 것입니다. 하도급 거래를 내부화해 직접 생산하는 것입니다. 외주 거래를 내재화하는 것이지요. 그럼 협력 기업 노조와 상대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시장거래에 맡기는 것입니다. 하도급 거래처럼 긴밀한 협력 관계가 아니라 건당 건당의 공급 계약을 맺어 느슨한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중소기업에는 위협과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대기업에 의해 사육당하는 동물원에 안주했지만, 앞으로는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가야 합니다. 안정적 대기업 물량을 포기하는 대신에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잘 대응하면 중소기업이 대기업 울타리를 넘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질 것입니다. 단기적으로 기업 거래 관계에 부정적 영향이 크겠지만 장기적으로 산업구조를 개선하는 변화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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