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80차 유엔총회에서 어조와 태도에서 서로 대비되는 기조연설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7개의 전쟁을 끝내는 동안 유엔은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며 유엔을 비난했고, 녹색에너지는 사기라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이 불법 이민 단속으로 성과를 거두었다며 여러 지도자들 앞에서 “당신들 나라는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다음으로 연설에 나선 이 대통령은 한국의 발전을 유엔의 성취로 돌리며 연설을 시작했다. 이어 당면한 국제 현안들을 제시하고 더 많은 민주주의, 다자주의 협력 등을 해법으로 제안했다. 또한 한반도에서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유엔이 표방하는 자유와 인권, 포용과 연대 가치를 증진하는 글로벌 강국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트럼프의 연설 내용은 외교적 발언이라기보다 국내 정치 캠페인의 연장이었다. 지지층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는 강한 리더십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반대 진영은 국제적 고립을 초래하는 파괴적 리더십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이에 반해 이 대통령의 기조연설은 자기책임을 강조하면서 절제된 표현을 사용했다. 연설 내용에서는 전임자의 분열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용 노선을 외교에서도 보여주었다.
정치지도자의 말투나 태도는 정치를 원한과 증오의 장으로 만들 수도 있고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의 장으로 만들 수도 있다. 정치는 원래 폭력적 공격성을 토론, 타협, 선거, 법치와 같은 제도화된 경쟁으로 전환하는 장치이지만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정치 자체가 문제가 되는 극단 정치로 흐른다. 필자는 이전 시론(“인간 본성은 어떻게 정치 양극화를 낳았나?”)에서 정치 양극화 원인으로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별하는 인간 본성, 인터넷 기술의 발달에 따른 매체 편향성, 그리고 정치가의 선동을 꼽았다. 이번 시론에서는 선동을 조장하는 정치지도자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선동하는 정치지도자는 자기책임감을 강조하는 대신에 상대 진영을 적으로 간주하고 증오를 조장하며 공격성을 보인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이런 공격성은 원한에 가득 찬 비천한 인간의 특징이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비천한 인간과 고귀한 인간을 구분했는데 비천한 자는 자신을 위협하는 적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것의 잔상(殘像) 혹은 대립물로 자기 자신을 선한 자로 규정한다.
비천한 인간은 자신의 무능과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원한을 내면화하고 외부의 적에게 투사한다. 자신이 의도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그 결과를 적에게 돌린다. 반면에 고귀한 자는 자기를 긍정하는 것을 좋음으로 규정한 뒤, 그것의 결여를 나쁨으로 본다. 고귀한 인간은 자기를 긍정하고 신뢰하는 자기책임감이 높은 창조적 인간이다. 그는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으면 그것을 자기에게 돌리고 자기 반성을 통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는 문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좀처럼 경쟁자를 공격하지 않는다. 고귀한 인간은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하 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不怨天 不尤人)” 능동적인 인간이다. 공자도 니체처럼 자기 긍정의 능동적 인간인지 여부로 군자와 소인을 구분했다. “군자는 자기에게 구하지만 소인은 남을 탓한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남 탓 하는 정치지도자는 국민의 불만을 외부에 투사해 지지를 얻지만 근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국민을 분열시킨다.
트럼프는 4월2일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미국인들이여, 오늘은 해방의 날”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는 미국이 오랫동안 무역에서 여러 나라로부터 약탈당해왔다고(ripped off) 주장했기에 관세로 미국을 해방시키겠다고 말한 것이다. 무역이란 서로 이익을 교환하는 행위인데 무역적자를 상대방의 약탈로 규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가게에서 10만원어치 물품을 구매한 사람은 10만원어치를 약탈당한 것인가? 가게 주인은 원가에 물건을 구입해서 판매 이익을 남기고 팔았고, 구매자는 상품이 주는 효용이 지불 가격보다 커서 이익이 되니 구매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상품의 원가가 8만원이고 소비자가 평가한 상품의 효용이 화폐가치로 15만원이라면 가게 주인은 2만원의 이익을 남기고 구매자는 5만원의 소비자 이익(이를 소비자 잉여라 함)을 보는 것이다. 판매 이익과 소비자 이익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다. 무역이든 국내 상거래든 상호 이익이 없이 한쪽만 손해 보는 어떤 거래도 성립되지 않는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교역 국가들의 약탈에 의한 것이 아니고 1980년대 이후로 추진한 세계화로 미국 제조업을 해외로 이전시킨 결과이다. 세계화로 미국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졌지만 대신 미국은 부가가치가 더 높은 IT 관련 산업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원인을 가까운 자신에게 찾아야 답이 나오는데 무역적자를 상대 국가에만 전적으로 돌리는 것은 국민 불만을 외부로 돌려 지지를 끌어내는 정치 선동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는 관세정책으로 수조 달러가 세입으로 들어와 미국은 다시 부유해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관세는 미국 기업과 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이다. 관세로 상대 국가의 부를 빼앗아 오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의도적 오도이다. 트럼프가 한국에게 3500억달러 현금 선투자를 요구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미국이 무역적자를 해결하려면 관세정책을 포함한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 약탈적 관세정책은 무역적자를 다소 줄이겠지만 제조업 생태계는 부활시키지 못하고 인플레와 경기침체를 유발하는 경제적 자해행위로 끝날 것이다. 트럼프의 남 탓 정치는 관세정책에서 끝나지 않는다. 9월30일 800여 미군 장성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이민 단속 반대 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미국을 위협하는 좌익 세력으로 규정하고 장성들에게 미국의 도시들을 미군의 훈련장으로 사용하여 그들과 맞서 싸울 것을 강조했다. 트럼프는 주지사들의 반대와 연방법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세가 강한 도시들에서 “반란 진압”을 내세워 군을 동원하고 있다. 10월1일 예산안 합의 불발로 시작된 연방정부의 임시 정지(셧다운)도 전적으로 민주당 책임으로 돌리면서 연방공무원을 해고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남 탓 하며 공격만 있고 타협 없는 트럼프 정치는 미국을 극도로 분열시키며 국내 외에서 커다란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9월19일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조사센터에서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의 75%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동맹국들도 미국에 등을 돌리고 있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퓨(Pew) 리서치센터에서는 25개 국가 국민들에게 자기 나라에 가장 위협적인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물었다.
7월8일 언론에 발표된 결과를 보면 캐나다, 브라질, 멕시코, 인도네시아는 미국을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꼽았다(조사 시점에 서 인도는 파키스탄을 최대 위협 국가로 꼽았는데 인도에 대한 50% 관세 부과는 7월30일에 발표되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그리스, 스웨덴 등의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다음에 미국을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꼽았고 스페인은 미국을 꼽았다. 호주는 중국 다음으로 미국을 꼽았다. 국내 여론 악화와 동맹국들이 반미로 돌아선 것은 트럼프가 자초한 것이다. 공자의 제자 증자가 말한 대로,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가는 법이다(出乎爾者, 反乎爾者也).”
오래 전부터 가톨릭 미사에는 신자들이 죄를 참회하는 시간이 있다. 신자는 사제의 인도에 맞춰 가슴을 세 번 치며 다음과 같이 외친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의 가장 큰 탓이로소이다.” 남 탓 정치지도자들은 천주교인의 참회 기도처럼 자기책임을 인정하는 시작점에서 서서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
김근배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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