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제비. 사람 사는 집 처마에 둥지를 틀고 어린 새들을 정성껏 돌본다.
논을 따라 늘어선 전봇대 전선에 나란히 앉았던 제비들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으면, 계절이 한 장 넘어갔다는 걸 알게 됩니다. 가을빛이 선명해지는 9월 중순이면 하늘을 누비던 까만 제비(Hirundo rustica, Barn Swallow)의 모습도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예로부터 “제비는 음력 9월9일 중양절에 강남 갔다가 음력 3월3일 삼짇날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제비가 무슨 계절의 표지판이기라도 한 걸까요? 중양절은 대개 10월 무렵, 삼짇날은 4월 무렵에 해당하니 가을에 남쪽으로, 봄에 북쪽으로 이동하는 철새들의 이동 시기와 잘 맞물립니다. 우리 선조들이 자연의 생태 리듬을 참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제비는 한국에서 번식하는 대표적인 여름철새입니다. 흙과 식물 섬유를 엮어 둥지를 만드는데, 비와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처마나 다리 하부에 단단히 붙입니다. 대략 일주일 남짓이면 형태를 갖춘 둥지가 완성됩니다. 작은 부리로 둥지 재료를 나르고 수천 번 다져 완성한 집은, 어린 새 너댓 마리가 자라날 때까지 제법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줍니다.
번식 과정에서 주로 암컷이 약 2주간 알을 품고, 어린 새들이 부화하면 암수가 함께 먹이를 물어 나릅니다. 먹이는 대부분 공중에서 사냥한 곤충입니다. 이러한 사냥 습성 때문에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비 오는 날 곤충이 젖지 않으려 낮게 날면, 그 곤충을 쫓는 제비의 비행 고도도 함께 낮아지는 까닭입니다.
이렇게 근거 있는 속담들이 여즉 전해져 내려오는 이유는 분명 선조들이 제비의 생활사를 가까이서 관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비는 사람 곁에서 살아가는 새입니다. 꾸룩새연구소 정다미 박사의 제비 서식지 이용 연구에 따르면, 제비는 대개 사람이 거주하는 인가에 둥지를 짓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도 사람의 통행이 잦은 장소에서만 번식하는 경향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동 시기가 다가오자 제비들이 옹기종기 모여 떠날 채비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래동화 '흥부전'의 장면은 제비의 생태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이 드문 집보다 복작복작한 집이 포식자를 피하기에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식구 많은 흥부네 집에 제비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생태적으로도 개연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제비, 박새, 참새 같은 작은 새들은 뱀이나 고양이 같은 포식자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사람 가까이에 머뭅니다. 천적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생존 전략입니다.
제비는 번식에 성공했던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장소 충성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흥부네 제비는 이듬해에 다시 돌아왔다죠? 이야기 속 제비 이야기는 사람이 거주하는 인가를 주로 번식 장소로 선택한다는 오늘날 연구 결과와도 맥을 같이합니다.
제비가 떠난 날과 돌아올 날을 마음 속 달력에 표시해봅니다. 빈 둥지를 보며, 다음 장의 계절을 기다리겠습니다. 봄바람 타고 다시 돌아올 제비를 향하여, 가을 하늘로 멀어지는 제비를 향해 편지 한 통 띄웁니다. “제비야, 내년에 다시 만나자!”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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