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태광산업(003240)이 교환사채 발행과
애경산업(018250) 인수 과정에서 잇단 논란을 빚으며 정부와 금융당국의 눈치를 살피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태광산업은 최근 교환사채(EB) 발행 관련 입장을 공시했지만, 애매한 표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시민단체도 태광산업이 오너 일가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한 꼼수를 이어가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태광산업, 교환사채 발행 여부 '애매한 정정공시'
태광산업은 24일 정정 공시를 통해 "가처분 소송 판결 이후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과 정부 정책, 시장 환경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회사와 주주의 공동 이익을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10월 중 이사회를 열어 발행 여부와 구체적 계획이 확정되면 재공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 계획을 밝히지 않은 채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 표현에 그친 것은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태광산업은 교환사채를 발행하고 싶지만 간(상황)을 보고 있는 것 같다"며 "만약 공시 후 발행을 하지 않거나, 수량 등 발행 조건 등이 변경되면 또 공시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또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전체 주식의 4분의1 가량인 자사주를 전량 담보로 교환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면서 "발행 규모를 줄여서 발행시도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시장과 규제기관의 반응을 살피며 시간을 벌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한편, 이번 공시 내용이 모호한 것은 태광산업의 잦은 공시 위반 전력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태광산업은 이미 7월 두 차례의 공시 불이행으로 한국거래소로부터 공시위반제재금 7600만원과 벌점 6점을 부과받은 전적이 있습니다. 장래사업·경영 계획을 지연 공시했고, 자기주식 처분 및 교환사채권 발행 결정과 관련해서도 거래 상대방인 한국투자증권의 이름을 누락해 정정공시한 바 있습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상 1년 이내 누계 벌점이 15점에 이르면 관리종목 지정 및 상장폐지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태광산업은 6월 발행주식의 24.41%에 해당하는 자사주 전량(27만1769주)을 담보로 교환사채를 발행하려 했습니다. 2대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의 교환사채 발행을 "경영권 방어용"이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발행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10일 기각됐고 18일 항고했습니다. 태광산업의 6월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단순 현금성 자산만 5000억원대, 단기금융상품까지 포함하면 약 1조3000억원의 유동성이 확보돼 있어 현금이 부족한 상황은 아닙니다. 교환사채는 채권이지만 일정 조건이 되면 회사 보유 자사주로 교환할 수 있어, 특정 투자자를 주주로 끌어들여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9월 정기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는 모든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자사주 소각 대신 특정 세력에만 유리한 구조를 만든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한국투자증권도 이에 부담을 느끼고 입장을 선회하면서 교환사채 발행 작업이 지연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거래 상대방인 한국투자증권이 자사주 관련 상법 개정과 종합투자계좌(IMA) 사업자 인가 문제로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아예 발을 빼려고 한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민단체, 티투PE 동원한 애경 인수는 "승계 꼼수"
시민단체들은 태광산업의 교환사채 발행 계획에 대해 상법 취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며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태광산업은 자사주를 담보로 한 교환사채 발행 시도와 함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자녀 지분이 포함된 사모펀드 티투프라이빗에쿼티(티투PE)를 애경산업 인수에 끼워 넣으면서 논란을 불렀습니다. 태광산업은 애경산업 인수에 티투PE를 끼워 넣었는데, 지난해 12월 설립된 티투PE는 태광산업과 계열사 티시스가 각각 41%, 이 전 회장의 자녀 이현준·이현나가 각각 9%를 보유해 총 18%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20% 미만이어서 공정거래법 사익편취 규제를 피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경제개혁연대는 22일 태광산업 이사회에 질의서를 보내 컨소시엄의 지분구성, 티투PE 참여 이유와 역할, 수익 배분 구조, 향후 자금 조성 계획, 그리고 티투PE 설립 시 이 전 회장 자녀와 티시스의 공동출자 배경 등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애경산업 인수는 자금력이 있는 태광산업이 직접 나서도 되는데 굳이 티투PE를 끼워 넣은 것은 회사 기회 유용 성격의 거래로 볼 수 있다"며 "공시가 나온 만큼 향후 진행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득의 경제정의연대 대표는 "교환사채 발행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 전에 지분을 확보하려는 꼼수였다"라며 "발행을 중단하더라도 애경산업 인수 등 다른 승계 작업은 계속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태광산업 관계자는 "교환사채 발행 일시와 관련 내용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며 "시장 반응과 상법 개정, 주주 대응을 종합 고려하여 검토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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