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3D 업종으로 전락한 장관직
2025-09-03 06:00:00 2025-09-03 06:00:00
정권이 바뀌어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장관 후보자들의 잔혹사가 벌어집니다. 전 부처 장관을 대거 교체하는 가운데 새로 선임된 장관 후보자들의 숨겨져 있던 비위나 편법이 속속 드러나며 여론의 비판이 거세게 몰아칩니다. 
 
이재명정부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방 국립대학 총장을 역임한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제자 논문 표절로 낙마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교육부 장관으로 새로 선임된 후보자는 학위논문 표절에 더해 음주운전, 친북 막말 논란 등의 다채로운 행적을 보여 이전 후보자보다 더 비교육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여가부 장관 후보자인 국회의원은 보좌관 갑질로 욕을 먹으며 버티다 결국 사퇴하고 현역 의원 불패의 신화를 깨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인 대학교수는 각종 세금과 과태료를 상습적으로 체납해 재산이 압류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특출난 흠이 없더라도 대다수 후보자 입장에서 인사청문회는 고통스러운 통과의례입니다. 개인과 가족에 관한 사항이 낱낱이 공개되며 모든 것이 발가벗겨집니다.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병역 기피 등의 전형적 낙마 기준에 걸리지 않아도 작은 실수라도 하나 있으면 비웃음을 사고 망신을 당합니다. 억울한 사정이 있어 해명하려 하면 변명한다는 누명이 덧씌워집니다. 
 
청문회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하면 장관도 못된 채 망가져 만신창이가 됩니다. 재수가 없으면 청문회에서 불거진 비위로 고발되어 검찰 조사와 소송에 시달리고 최악의 경우 형사처벌을 받아 옥고를 치르기도 합니다. 몇 년 전에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나갔다가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이 문제가 돼 온 가족이 곤욕을 치르고 패가망신한 법대 교수도 있습니다. 
 
청문회를 통과해 장관이 된다고 꽃길만 걷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장관이 실권을 쥐고 정책을 자기 뜻대로 펼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해 장관이라고 힘이 없습니다. 관료 조직의 장악력은 인사권과 예산권에서 나오는데 장관이 이를 마음껏 행사하지 못합니다. 하위직 공무원 인사는 인사혁신처에서 다루고 고위직 공무원 인사는 대통령실이 좌우합니다. 부처 예산은 기재부와 국회가 꽉 잡고 있어 장관이 중점을 두는 사업에 예산을 배정하기 어렵습니다. 장관은 자기 부처 안에 새로운 국이나 과도 신설할 수 없고, 팀 등의 소규모 조직도 행정안전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만들 수 있습니다. 대통령제에서 권력은 대통령실에 쏠려 장관의 재량권이 별로 없습니다. 대통령실과 상의하지 않고는 장관이 산하 기관의 기관장도 원하는 사람으로 임명하지 못합니다. 
 
장관은 온갖 회의와 행사에 불려 다니느라 정책을 깊이 있게 구상할 시간 여유도 갖지 못합니다. 국회의 국정감사는 장관 업무 능력의 시험대로 가장 어려운 과업입니다. 상임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부처뿐 아니라 소속 공공기관에 대한 질의도 장관에게만 집중합니다. 수많은 정책과 사업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답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답변 하나라도 잘못하면 여론의 질타를 받고 무능한 장관이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지난달 국회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이 우리나라 코스피 PBR이 10배 정도라고 답했다가 자본시장에 대한 기본 이해도 안 되어 있으면서 경제부처의 수장 역할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뭇매를 맞았습니다. 
 
부처와 관련된 사건이나 재해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장관은 죄인 취급 당하며 책임 추궁과 사퇴 압박을 받습니다.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면 탄핵을 당하거나 형사고소되어 사법 처리가 되기도 합니다. 정권이 바뀌면 적폐청산의 대상이 되어 국정조사와 특검에 시달립니다. 
 
이토록 고생하는 것에 비해 보상은 미약합니다. 장관의 연봉은 약 1억5000만원에 불과합니다. 민간기업의 CEO 대우와 비교가 안 됩니다. 퇴직하면 3년간 재취업 제한에 걸려 사외이사나 로펌 고문처럼 돈 되는 자리에 가지도 못합니다. 
 
요약하면, 장관직은 이제 더럽고(Dirty) 힘들며(Difficult) 위험한(Dangerous) 3D 업종이 되었습니다. 장관이 되면 명예가 더럽혀지고 고된 업무에 시달리며 사법적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잘나가는 사람은 누가 권한과 보상은 작고 책임과 위험만 큰 장관 자리에 오려 하겠습니까? 직업 공무원이 아니면 굳이 장관을 하려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최근에 공직의 인기가 하락하며 일반직 공무원 수험생이 역대 최저로 하락하고 고시 출신 공무원의 조기 퇴직도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능한 인재들이 공직을 기피하니 소는 누가 키울지 걱정됩니다. 국회의원의 권력은 커지고 장관 권한은 줄어들어 정치만 성행하고 정책은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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