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태은 기자] 정부가 중대재해 발생 기업의 공공 입찰 참여 제한을 본격화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입찰 자격 영구 박탈 등 강력한 제재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입니다. 현재 정부는 동시에 2명 이상 사망할 경우 최대 2년간 공공 입찰 참여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를 '연간 다수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로 확대해 제재를 강화할 방침입니다. 기업이 스스로 안전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안전 관련 투자를 늘리도록 국가계약제도 전반을 손질하는 모습입니다.
입찰 제한 기준…'동시 2명 이상 사망'→'연간 다수 사망'
임기근 기획재정부 2차관은 20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제3차 조달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가계약제도 개선 방안'을 심의·의결했습니다. 산재 근절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정부가 공공부문부터 안전 강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개선 방안에는 중대재해 발생을 강력 제재하기 위해 안전 불감 기업의 공공 입찰 참가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은 동시 2명 이상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최대 2년의 공공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연간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는 경우에도 제한하도록 규정을 확대 강화합니다.
입찰 참가가 제한된 기업이 제재를 회피하는 것도 막습니다.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와 업계·전문가 등과 협의를 거쳐 법인 분할이나 명의 변경을 하는 경우도 제재 효력이 승계되도록 법률 개정안 등을 마련할 방침입니다. 정부는 계약법령 및 예규는 올해 11월까지 개정을 완료하고, 법률 개정은 이번 정기국회 내 통과를 목표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기업의 안전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지원책도 마련했습니다. 시공사의 귀책 사유 없이 장기계속공사의 공기가 지연되면 연장 비용을 지급할 수 있도록 법령을 다듬습니다. 정부는 기업의 자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사계약 계약보증금률을 15%에서 10%로 낮추고, 기술제안입찰이 유찰될 경우 계약금액에 물가 변동을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100만원 미만의 적격심사 대상 공사는 낙찰 하한율을 2%포인트 상향해 적정 공사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정부는 향후 물품 구매의 낙찰 하한율 상향도 추진키로 했습니다.
공공 계약 과정에서의 안전관리 체계도 강화합니다. 경쟁 참가자의 자격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제한하는 제한경쟁 입찰 사유에 '안전 분야 인증'과 '안전 전문 인력 및 기술 보유 상태' 등을 추가합니다. 이에 따라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사업은 제한경쟁을 통해 자격 미달 업체의 입찰 참가를 제한합니다.
낙찰자 선정 단계에서도 안전 평가를 강화할 방침입니다. 공공공사 낙찰자 평가 시 중대재해 위반 항목을 감점 항목으로 신설합니다. 또 100억원 이상 공사에서 가점 항목으로 운영하던 '안전' 평가를 정규 배점 항목으로 전환합니다. 300억원 이상 종합심사제(종심제) 대상에만 적용한 시공평가 항목도 100억~300억 구간의 간이형 종심제 사업에도 도입합니다. 시공평가는 과거 수행한 공공공사의 품질 및 안전 관리 성과 평가를 말합니다.
간접 노무비, 안전 관리비 등 안전과 직접 관련된 비용의 적용 기준 상향을 관계 기관과 함께 추진합니다. 아울러 공사 중 안전 문제가 발견될 경우 계약 상대자(건설사)가 직접 공사 중지를 요청할 수 있는 조항도 계약 예규에 신설됩니다. 이 경우 지체 상금 등 불이익을 면제해 건설사의 선제 대응을 유도합니다.
산재 압수수색만 8차례…중대재해 기업 '정조준'
이 대통령은 출범 초기부터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정부 차원의 강력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고용부와 경찰은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산재 관련 압수수색을 이날 기준 총 8차례 진행했습니다. 특히 포스코이앤씨를 비롯한 건설사를 대상으로 이달 들어 세 번이나 압수수색에 착수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이날도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추락 사망사고와 관련해 시공사 DL건설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했습니다. 지난 8일 DL건설 하청업체 소속 50대 노동자 A씨는 경기 의정부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아파트 외벽에 설치된 낙하물 방지망을 해체하던 중 약 6층 높이에서 추락했습니다. 이후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치료 도중 끝내 숨졌습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틀째인 6월5일 첫 국무회의에서부터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도 사망사고가 줄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어떤 상황이냐"고 보고를 요구했습니다. 지난달 3일 열린 취임 한 달 기자회견에서도 이 대통령은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부터,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재발 방지책 마련까지 안전 사회 건설의 책무를 외면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직접 경기 시흥 소재 SPC삼립 시화공장을 찾아 현장 점검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일 휴가 중에도 올해 들어 사망사고만 4차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에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정부 차원에서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모두 찾아 보고하라"며 강도 높은 대책을 지시했습니다.
임 차관은 이날 회의에서 "이번 개선 방안을 통해 계약 과정의 안전 관리 체계 강화, 기업의 안전 투자 지원 병행과 함께 중대재해 기업에 대한 강력하고도 실효적인 제재라는 세 축을 동시에 추진한다"며 "안전을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정착시키고, 안전 불감 기업은 공공 입찰 시장에서 퇴출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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