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면, 왕조시대 유물…개폐 필요
2025-08-14 06:00:00 2025-08-14 06:00:00
또 어김없이 사면 논란이다. 사전을 찾아봤다. “사면(赦免): 지은 죄를 용서하여 형벌을 면제함”(포털사이트 ‘다음’ 한국어대사전). 
 
사면은 궁극적으로는 통합으로 가는 정치 행위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바뀔 때마다 사면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격화됐고, 사면의 본디 목표나 의미는 실종된 채 ‘주고받기식 거래’라는 비판과 허탈감을 남기고 끝나버리곤 했다. 사진기자에게 들켜서 공분과 지탄을 받은 뒤 철회하기는 했지만, 국힘 원내대표가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정치자금법 위반자와 심지어 성폭행 유죄까지 받은 자당 출신 정치인들의 사면을 버젓이 부탁했다. “감사합니다^^”라는 표현과 함께. 물론 기자에게 들키지 않고 명단이 전달되었다 해도 대통령이 사면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믿지만, 일부 정치인들이 아직도 사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난 폭거다. 다른 정부도 아닌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대통령에게 그런 거래나 제안을 할 정도로 썩어 있다. 사면을 이렇게 오염시키는 작태나, 반복되는 논란과 공방을 원천적으로 끊어내야 한다. 
 
1987년 6월 시민대항쟁으로 독재정권의 폭압 통치가 꼬리를 내리며 표면상이나마 민주화가 진행된 결과로, 1987년 7월9일 이른바 ‘시국 사범’이 대거 사면-복권됐었다. 그 사면은 민중의 승리에 따른 시대정신의 반영이므로 은전적 사면과는 당연히 거리가 멀다. 폭압 정치의 희생자를 사면-복권시킴으로써 공의를 회복하고 권위주의 통치의 부당성을 공식화한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국민 통합에 기여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내란 수괴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특별사면이 나쁜 관행의 시작이었다. 이후 대부분의 사면은 정치적 논란과 격렬한 찬반을 낳았고, ‘이상한 전통’이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이 되풀이를 끊어낼 때가 된 게 아닌가 싶어 제안한다. 전-노 사면으로 민주주의의 정기가 손상되는 등 첫 단추가 잘못 꿰졌지만, 그 과오를 이유로 소모적 논란이 되풀이되는 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사면이란 봉건시대 절대왕정 체제의 왕이 행사했던 것이다. 민주주의와 삼권분립 정신이 일점일획도 없던 왕조시대의 소산이다. 왕조시대가 끝난 지 100년이 훨씬 넘고, 국민주권과 삼권분립의 민주공화정이 움직일 수 없는 가치로 정착된지 수십 년인데 사면은 아직도 법률 체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것도 기관 간 승인이나 토론조차 필요없는 ‘고유 권한’이라는 갑옷을 두르고. 고유 권한이라는 말 자체가 시대정신에 역행한다. 그래서 사면 논란이 일 때마다 사람들은 사면이라 쓰고 보상이나 보험이라고 번역해서 읽기도 한다. 사면제도가 몸에 맞지 않는 옷임에 분명하건만 누구도 감히 ‘대통령 고유 권한’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게 ‘한국식 대통령제’의 현실이다. 
 
되풀이되는 사면 논란의 핵심은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급에 대한 사면이다. 사면권이 행사되면 수사-기소-재판을 거쳐 정해진 결과는 일거에 그 효력을 잃는다. 수사에서 재판까지의 각 단계는 모두 국가의 공적 행위였으며, 당연히 국가의 인적-물적 자원이 들어갔다. 물론, “정치적 이유로 기획 수사와 타겟 기소를 당했거나, 불공정한 재판의 결과이기에 그것을 바로잡는 사면은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이 항상 동반된다. 일응 타당하다. 문제는 그것을 누가 어떤 기준이나 증거로 감별하느냐는 것이다. 
 
재수사나 재심은 현실적으로 무망하거나 너무 오래 걸리기에 특별사면 형태로 이뤄지곤 했다. 결국 누가 정치적 승자가 되느냐, 즉 대통령이 어느 진영에서 나왔느냐에 따라 사면의 폭과 규모가 정해져왔던 게 일정 부분 사실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타당성이나 결론이 바뀌곤 하는 사면 논란의 소모적 반복을 방지하는 길은, 사면 제도 자체에 대한 개폐라고 본다. 
 
민생 사범에 대한 사면으로 국한하거나, 사면제도 자체를 없애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경제 사범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사건이 왕왕 있었다. 그 점은 문제가 된 사건의 성격이나 금액 규모 등을 따져 구분하면 될 일이다. 동네 골목 식당 주인이 정치-경제적 사건을 일으킬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민생 사면의 경우도 대통령의 ‘은전’이라는 봉건적 여운을 피하는 게 중요하다. 관할 부처인 법무부가 국무회의 심의와 의결에 따라 사면 대상 위법행위와 사건의 기준을 공개적으로 정해 집행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논란이 되는 정치인이나 총수급 경제인 사면은, 정치적 탄압에 의한 피해가 현저히 의심될 경우 특별검사와 특별재판부에 의한 ‘초신속 재심 절차’를 통해 처리하면 어떨까. 즉, 대통령 고유 권한 행사에 따른 결심과 은전에서 벗어나 공개적 제도와 절차를 만들자는 것이다. 
 
각 분야의 봉건성과 독재적 요소를 이미 걷어냈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어제까지 그렇게 해왔으므로 오늘도 그렇게 하는 것’은 개혁이나 발전이 아니다. 기준과 규범을 처음으로, 또는 새로 만든다는 자세로 일하는 게 국민주권정부의 특권이자 의무가 아닐까. 
 
이강윤 정치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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