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검찰 개혁 어설프게 하다가는 국민만 피해 본다
2025-08-08 06:00:00 2025-08-08 06:00:00
새 정부 들어 검찰 개혁 물결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걱정이 앞선다. 왜냐면 지난 문재인정부 때 검찰 개혁은 실패했는데 지금 정부 여당이 반성 없이 그 본질을 답습 또는 심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운다’라는 옛말이 있다. 아무리 정치 검찰이 미워도 그 소수를 솎아내고자 나머지 검찰 기능과 수사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키는 식은 곤란하다. 이미 문재인정부 때 이룬 ‘검수완박’이 지금 국민에게 어떤 피해를 주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 
 
경찰이 배타적 수사권과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되면서 전문성 발전 없이, 일이 많아지니 이전보다 더 게으르게 수사한 뒤 그 초라한 결과물을 들어 스스로 '증거 불충분'이라면서 수사를 종결해버리는 해괴한 일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의 신청'을 하면 사건이 검찰로 올라가지만 애초에 최초 수사에 관여하지 않은 검사는 이의 신청 사건에 흥미도 없고 바로잡을 의지도 없다. 정치권과 개정 법률이 검사들에게 ‘일을 하지 마!’라고 대놓고 무안을 주고 있기 때문에 검사들 정서가 지금 그렇다. 검사들은 ‘우리 없이 한번 잘해봐 그럼’식의 심통이라도 부리듯 이의 신청 사건을 기계적으로 무혐의 처분 해버린다. 심지어 고발 사건의 경우 누구도 이의 신청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현실에서는 경찰이 대법관이 되어버렸다. 경찰은 ‘무혐의니까 무혐의다’라는 허술한 논리로 일을 해태하기 일쑤다. 법률가로서 기가 막히지만 인간적으로는 인지상정 이해가 간다. 급여가 그대로인데 일만 늘어나면 누구라도 ‘수사 종결’의 유혹에 빠질 것이다. 사건 자체가 복잡하고 법리도 잘 모르겠고 증거도 경찰이 직접 수집해야 하는 사건이면 더더욱 그런 유혹은 심하게 온다. 나라에서 경찰 인력이라도 확실히 충원해주었던가? 결코 아니다. 현장 경찰들의 불만이 크다. 이런 불만도 이해한다. 경찰들에게 물어보라. 누구는 능력을 키우기 싫겠는가, 누구는 범죄자들 보면 울화가 안 나겠는가. 경찰도 지금 여건이 안 되니까 비겁해지고 불의해지는 것이다. 항의하는 민원인들 앞에서 경찰이 겉으로는 강압적으로 대해도 속으로는 면목이 없을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속절없이 갑자기 격무에 시달리면서, 일은 마음처럼 잘 안 되고, 그래서 내적 갈등에 고통받고 있는 경찰이다. 동정이 간다. 
 
상황이 이런데, 검찰은 일이 혁명적으로 줄었다. 수사도 이제 못 하고, 이의 신청 사건이 올라와 봐야 무혐의 처분 내려도 예전처럼 국민 앞에 검찰이 책임지기보다는 배타적 수사 주체인 경찰의 책임이라고 회피해버릴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하게 사건을 털어버리게 되었는가. 지인 검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검찰 수사관, 검사들이 마치 ‘수능 친 고3처럼 회사를 다닌다’고 한다. 너무 큰 낭비다. 아무리 검찰이 미워도 건국 이래 수십년 동안 수사 노하우와 법리를 축적해온 중요 집단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수사 절차에서 거의 소거돼버렸다. 
 
이러다 보니 변호사들은 고소 사건, 고발 사건 수임하기가 겁이 난다. 어떻게 하면 경찰이 내 사건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을지, 경찰에게 이 법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이해를 쉽게 할지, 다른 일 많다고, 의뢰인과 변호사가 진상이라고 그냥 수사 종결해버리지는 않을지 머리를 싸맨다. 수사 종결 이후에 경찰로부터 그 이유서를 받아보아도 당최 수긍이 되지 않는 경우가 점점 늘어만 간다. ‘아, 귀찮아서 수사 안 하겠다는 거구나’라는 느낌만 드는 경우가 너무 많아진다. 수사를 해달라고 고소를 하고 고발을 한 것인데 경찰은 우리더러 증거를 가져오라고 한다. 국민인 의뢰인과 변호사는 수사권이 없다고 항의하면 그냥 수사 종결이다. 실로 경찰이 판사 행세다. 나 역시 울며 겨자 먹기로 민사소송을 먼저 제기해서 법원을 통해 증거를 확보한 뒤 이를 활용해 나중에 형사 고소고발을 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완전 거꾸로 되었다. 
 
지금이라도 원상복구할 것은 해야 한다. 첫째, 경찰의 수사 종결권 폐지. 둘째, 경찰이 수사한 사건은 예전처럼 전부 검찰로 송치해서 검사에게 재검토 및 기소 여부 판단 의무 부여. 셋째, 검찰의 직접/인지 수사권 폐지로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원칙 확립. 이 정도만 일단 해주면 된다. 굳이 왜 검찰이 아무 일도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검찰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고, 가진 능력을 바르게 쓰도록 적극 활용해야 한다. 
 
진영 논리와 내로남불, 직업으로서의 정치 세계에서 기득권을 조금도 위협받지 않고 부정부패를 되도록 견제받지 않으려는 악성 마키아벨리식 사고로 정치인들이 검찰 시스템을 아무렇게나 건드리면 안 된다. 문재인정부 검찰 개혁 실패 이후 이미 현실의 ‘수사판’은 엉망이 되었다. 이보다 더 범죄자들의 천국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이전 수준 정도로 복귀라도 할 것인가. 답은 명징하다. 일단 비정상의 정상화부터 시켜놓고, 수사 시스템 정상 범주에 영향이 없는 선에서 정치 검찰, 기소독점주의 검찰, 과잉 수사 검찰을 개혁하면 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일, 위험한 정치 게임의 판돈으로 수사 시스템을 가지고 놀면서 국민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지 못하는 일을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범죄 피해자가 되어 구제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국민들의 피울음과 분노를 두려워해야 한다. 
 
류하경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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