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대통령선거 직후 곧바로 출범한 이재명정부가 전 정권 인사와의 '불편한 동거'를 지속하는 가운데 여당이 칼을 빼 들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공공기관 경영평가' 재검토를 주장하는가 하면,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 맞지 않는 인사들을 향해 "스스로 판단하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는 모습인데요. 그럼에도 묘수는 마땅치 않습니다. 자칫 무리하게 공공기관 인사 교체를 시도했다가 문재인정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태가 재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정 철학 맞아야"…법안 발의 '러시'
1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신영대 의원은 대통령 임기 종료 6개월 전부터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기관장·감사·이사 신규 임명을 제한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공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공공기관 임원이 정부 기조와 상충하는 방식으로 기관을 운영해 정책 집행에 중대한 차질을 초래할 경우 절차를 거쳐 그 임원을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앞서 같은 당 박해철 의원은 3년인 공공기관장 임기를 이사·감사와 같은 2년으로 줄이고 대통령 임기 종료일부터 3개월이 지나면 자동 만료한 것으로 보는 공운법 개정안을 대선 전인 지난 4월 대표 발의한 바 있습니다.
조계원 의원과 장경태 의원은 이른바 '알박기 인사 방지법'을 각각 대표 발의했는데요. 조 의원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의 장을 임명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장 의원은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로 권한 정지 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동의를 받아 기관장을 임명하는 법안을 내놨습니다.
정부 부처들이 모여 있는 정부세종청사 전경. (사진=뉴시스)
모두 윤석열정부 시절 임명된 공공기관 인사를 겨냥한 것입니다. 윤석열씨의 파면으로 전 정부 임기가 3년으로 줄어든 데다 별도의 준비 기간 없이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재명정부 초기 전 정부 인사와의 동거는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이 나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전현희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실질적으로 국정 철학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정부를 운영하는 게 맞다"며 "이재명정부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고, 강제로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 쫓아내려고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정부의 국정 철학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권 교체기'마다 알박기 논란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2024년 지정된 공공기관의 상임 임원 임기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전체 331곳 중 221곳(66.8%)의 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석인 19곳을 제외하면 70.8%에 달합니다. 이 중 130곳은 잔여 임기가 2년 이상입니다.
세부적으로 공기업 31곳 중 17곳(54.8%), 준정부기관 57곳 중 39곳(68.4%), 기타공공기관 243곳 중 165곳(67.9%)의 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아 있습니다.
반면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기관장은 38명입니다. 이미 임기가 만료된 곳과 공석인 곳을 포함하면 새 정부가 올해 임명할 수 있는 기관장 자리는 78곳에 불과합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임명된 기관장은 56명으로, 이 가운데 53명은 탄핵 가결 이후 임명돼 이른바 알박기 인사 논란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리더스인덱스 설명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윤석열정부의 알박기 인사 논란과 함께 공공기관 운영에 대한 성적표인 '경영평가'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민주당 '내란 은폐 및 알박기 인사 저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정일영 의원은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각 기관의 성과급, 예산 반영, 기관장과 상임감사의 연임 여부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이번 경영평가는 평가 시기와 구성, 지침 모두 윤석열 정권 아래서 이뤄진 것으로 새 정부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전 정권과의 불편한 동거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뾰족한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과거 문재인정부 인사들이 박근혜정부의 인사 목록을 작성하고 사퇴를 종용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점을 남긴 바 있죠. 이 일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알박기 인사 문제는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문제입니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지난 2022년에도 대통령과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시키는 법안이 추진됐지만 여야 이견으로 좌초됐는데요. 이런 문제에 대해 민주당 한 의원은 "국회뿐만 아니라 정부와 협의할 부분도 있다"면서 "매우 예민한 문제"라며 말을 아꼈습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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