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각지대)①(단독)성폭력 송치율 매년 하락…수사기관 '성인지 감수성 부족'
성폭력 범죄 경→검 송치율, 2020년 69.31%에서 2023년 63.33%
2021년 이후 송치율 내림세…"윤석열정부 '무고죄' 강화 영향도"
법조계 "가해자에 대한 처벌 기대감 높지만, 현실은 안 그래"
"수사기관 스스로 인식을 개선하려는 적극적 노력 필요하다"
2025-06-11 06:00:00 2025-06-11 14:23:27
[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도 수사기관에 제대로 잡히지 않고, 검찰로 송치되는 비율도 낮아지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용기를 내 어렵게 한 걸음 떼더라도 수사에서부터 막힌 겁니다. 미투 운동(Me Too Movement) 이후 성폭력 문제에 관해선 불관용 원칙이 확산됐고,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중요성도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성 인식은 퇴보한 모습이고, 수사는 점점 고도화되는 성폭력 범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런 현실에 부닥친 피해자들은 괴리감을 느끼게 되고, 갈수록 용기를 잃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성폭력 사각지대를 없애려면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인식도 개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편집자)

사례) A씨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을 당해 가해자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가해자가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경찰이 보낸 수사 결과 통지서를 받았는데, "고소인(A씨)이 즉각적인 불쾌감 표시나 거절 등으로 상황을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는 상태였다고 판단된다"며 "피고소인(가해자)의 행위 자체가 고소인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적혀 있었던 겁니다. '증거불충분으로 인해 혐의 없다'는 뜻입니다. 가해자는 A씨를 추행한 사실이 인정돼 회사로부터 제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오히려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준 셈입니다. A씨는 "인정할 수 없다"며 즉각 이의신청을 했지만, 가해자로부터 보복을 당할까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자료=양부남 민주당 의원실, 경찰청)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양부남 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성폭력 범죄와 관련해 검찰로 송치한 비율은 매년 내림세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2020년엔 69.31%, 2021년엔 73.07%, 2022년엔 68.49%, 2023년엔 63.33% 등으로 집계됐습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송치율은 6%포인트나 낮아진 겁니다. 
 
경찰은 성폭력 범죄를 유형에 따라 △강간·강제추행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통신매체 이용 음란 △성적 목적 공공장소 침입 등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송치율이 가장 높았던 성폭력 범죄는 카메라 등을 이용해 타인의 신체를 촬영한 행위입니다.
 
'카메라 등 이용 촬영'의 송치율은 △2020년 75.99% △2021년 77.57% △2022년 73.15% △2023년 72.16%입니다. 성폭력 범죄 유형 중 유일하게 매년 70% 이상 송치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연도별 송치율입니다. 2021년을 기점으로 송치율이 줄고 있어서입니다. 전체 성폭력 범죄의 송치율은 물론 유형별 범죄의 송치율에서도 동일한 경향이 확인됩니다. '강간·강제추행'의 송치율은 2021년 71.52%을 기점으로 2023년엔 68.31%로 내려갔습니다. '성적 목적 공공장소 침입'의 송치율은 2021년 68.34%에서 2023년 65.17%로 감소했습니다. 특히 '통신매체 이용 음란' 송치율은 2021년 74.83%였다가 2023년엔 43.63%로 급락했습니다. 
 
2021년 이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공교롭게도 윤석열정부 출범과 맞물립니다. 윤석열씨는 20대 대선 당시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를 공언한 바 있습니다. 2021년 10월21일 청년 공약을 발표하면서 "사법질서를 훼손하는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무고조항을 신설해 거짓말 범죄를 근절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혜진 변호사는 "실제로 그런 법률이 개정되진 않았지만 사회적 분위기에 분명히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면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나 지원을 말하면서 동시에 무고를 같이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무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 피해자가 스스로 (무고인지 아닌지) 자기검열을 해야 하고, 수사기관에서 검증을 받아야 하는 식이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A씨 사례처럼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신고·고소했음에도 경찰에서 '증거 불충분', '혐의 없음' 등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사례가 잦다는 게 법조계의 진단입니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제도 개선과 함께 수사기관·사법기관이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서 변호사는 "성폭력에 대한 편견, 특히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위력 관계에 의한 성폭력에 대해선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인식이 낡았다. 여전히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처벌 강화 등이 언급되는 사회적 분위기나 반여성주의적인 흐름에 수사기관이나 법원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A씨는 "저는 성추행을 당한 자리에서도 상사(가해자)와의 관계를 해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웠고 억지로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런 점들을 무시하고 경찰이 '고소인(A씨)이 즉각적인 불쾌감 표시나 거절 등으로 상황을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는 상태였다고 판단된다'라고 한 것은 가해자를 대변하는 시각이다. 경찰이 아직도 이렇게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를 전문으로 변호하는 이은의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성인지 감수성이나 인권 감수성이 진일보한 흐름도 있었지만, 수사·사법기관은 보수적으로 회귀한 면이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 처벌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데 괴리만 더 커지고 있다"며 "수사기관 스스로 인식을 개선하려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송치율이 낮아지는) 가장 큰 원인은 통신매체 이용 음란에 대한 송치율이 낮아진 것"이라며 "2022년 6월에 '게임 내 성적 욕설이 통신매체 유형 음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 그 이후로 신고 건수 대비 송치율이 확 낮아졌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