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30일 ‘
대선 후보들의 기후위기 토론을 기대한다’라는 제목의 시론을 썼다. 사실 기대와는 달리 반신반의했었다. 그런데 지난 5월23일 열린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2차 TV토론회에서 사회 갈등 극복과 통합 방안, 초고령 사회 대비 연금·의료 개혁과 함께 기후위기 대응 방안이 주요 토론 주제로 다뤄졌다. 그동안 기후 환경 단체들이 요구해온 기후위기를 단일 의제로 한 토론회는 아니었지만, 1997년 대선 후보 TV토론회가 처음으로 실시된 이후 기후위기가 공식 주제로 포함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니 주목할 만한 변화이자 성과라 할 수 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선 후보의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토론 내용은 일반 시민들의 상식적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게 했다.
대표적으로 국민의 힘 김문수 후보는 “일본 나가사키·히로시마급 소형 원자폭탄이 떨어져도 원자로는 안전하다”거나 “원자력이 위험하지만 가장 안전한 에너지죠. 석탄발전은 위험 안 합니까? 위험 안 한 게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재생에너지가 위험 안 합니까?”라며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중국이 많이 장악한 풍력 시장”이라며 재생에너지를 ‘친중’과 연관시키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환경 PC주의는 국가 정책을 왜곡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며 본인 스스로 왜곡된 세계관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상식 수준 이하의 이해할 수 없는 토론이었음에도 대선 후보들 사이의 인식 수준 차이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나마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이번 대선 후보들이 발표한 기후 환경 공약도 지난 대선 때를 답습하거나 후퇴했다는 평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재생에너지 확대 등 방향성은 뚜렷하나 구체적 방법이 모호하고 일부 논쟁적 사안은 회피했고,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는 기후 공약을 사실상 내놓지 않았거나 후퇴한 것으로 평가됐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가장 적극적인 기후 공약을 발표했지만, 높은 목표에 비해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기후 공약에서 빼놓을 수 없는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언급한 후보는 이재명과 권영국 후보뿐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과학적 근거에 따라’ 계획을 수립하겠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고, 권영국 후보는 2035년 달성해야 할 목표를 2018년 대비 70%로 제시했다. 또 이 과정을 총괄하는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는 것만큼 배출량을 줄이는 방안도 중요하다. 이재명 후보는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하겠다고 공약했다. 원자력발전에 대해서는 기존 원전과 수명 연장이 가능한 원전은 계속 쓰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가겠다고 했다. 권영국 후보는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6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공재생에너지법을 제정하고 해상풍력을 비롯한 전력산업의 민영화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2035년까지 탈석탄, 2040년엔 탈원전을 달성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필요한 재원은 기후정의세를 도입해 마련하겠다고 했다. 김문수 후보는 전체 발전량 중 30%대인 원전 발전량의 비중을 60%까지 늘린다고 했고, 이준석 후보는 10대 공약에 관련 정책이 포함되지 않았다.
대선 후보들과 비교해 ‘기후민주시민’의 인식은 어떨까. 녹색전환연구소·더가능연구소·로컬에너지랩이 함께 하는 ‘기후정치바람’이 ‘2025 기후위기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회차를 맞는 이번 조사는 2025년 4월 7~30일 동안 1만8000명(17개 광역시도별 800명, 전국 44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전국 4482명을 대상으로 한 1차 결과가 먼저 발표됐다. 2023년 12월~2024년 1월 기간 진행됐던 1회차 조사에서는 한국에 ‘기후유권자’가 33.5%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한국 사회 내 ‘기후시민’과 ‘민주시민’을 각각 도출한 후 이들 데이터를 결합해 ‘기후민주시민’으로 정의하고 이들의 응답을 분석했다.
기후민주시민은 기후위기를 민주주의적 가치와 연결해 인식하고 정책적 해결을 중시하는 시민 집단으로 정의됐고, 이들은 전체 응답자의 36%에 달했다. 기후민주시민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68.1%)가 우선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원자력발전 확대(13.6%), 석탄발전 감축(11.4%)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기후민주시민이 선호하는 정책 방향은 ‘국가 주도 공공투자 중심형’(49.5%)이 가장 많았고, 적극적인 배출 규제 중심형(20%), 보조금을 동반한 민간투자 중심형(19.5%)의 순이었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준수해야 한다는 응답이 63.4%, 탄소중립을 하루빨리 달성해야 한다는 응답은 74.9%로 높았다. 향후 출범할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취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응답은 62.3%, 부총리급 기후위기 대응 부서 신설에 대해서도 57%가 동의했다.
이 밖에도 설문에 응답한 시민들의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보다 보면, 대선 후보들의 토론이나 공약보다 시민들의 인식이 훨씬 더 앞서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향후 출범할 정부는 시민과 정치인 사이에 벌어진 이러한 격차를 좁혀 나갈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이 시행한 바 있는 ‘기후시민의회’ 사례를 고려할 수 있다. 다음 시론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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