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 정치의 반대말은 진영 정치다. 대한민국 진영 정치는 싸움을 참 많이 해왔고, 한국 대통령은 가끔 통합 정치를 할 때만 국가적으로 중대한 일을 했다. 돌이켜보건대, 한국 헌정사에서 노태우와 김대중 정권 때 가장 많은 일을 해냈다. 노태우 대통령 때의 3당 합당은 인위적 정계 개편이었고, 김대중 대통령의 DJP 연합은 선거 연합으로 진짜 통합 정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 통합의 위력은 컸다.
1990년을 전후로 북방정책·지방자치제 부활, UN 동시 가입, 남북한기본합의서 채택, 한반도 비핵화 선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추진, 우리별 1호 발사, 경부고속철도 노선 지정, 신국제공항 건설 계획, 수도권 집중 억제 대책과 수도권 5개 신도시, 최저임금제도·토지공개념·지역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었다. 또한 2000년에 들어서는 국가정보원,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전 국민 국민연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IMF 극복, IT·벤처기업 육성, 월드컵 공동 개최, 노사정위원회 설립이 이루어졌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 후보가 조선의 선조와 정조를 비교하면서 통합 정치를 역설하고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국란에서도 선조는 동인과 서인 간의 진영 정치로 조선 영토마저 내어줄 판이었다. 같은 조선시대임에도 당파를 불문하고 탕평의 정치를 한 정조시대에는 한때의 부흥을 누렸던 것으로 통합 정치의 위력을 매우 설득력 있게 강변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통합 정치는 소환·동원되고 있다. 심지어 불통 정치의 대명사인 윤석열 전 대통령마저 안철수와 통합 정치를 한다고 해서 대통령이 되었던 걸 보면 통합 정치는 구호만으로도 그 위력이 가공할 만하다. 이는 결국 통합 정치가 오용·남용된 대표적 사례로써, 한국 정치의 성공 조건이 아닌 선거 승리의 비책으로만 사용되었던 것이다.
통합 정치는 연대(탕평)와 책임(전문성)을 핵심 가치로 한다. 정치적 연대는 보수·진보의 연합이 있을 수 있고, 당내 주류·비주류의 결합도 포함한다. 유능하고 전문적인 일꾼들의 통합 정부는 통합 정치의 배양조건이 있을 때 비로소 실천할 수 있다.
제20대 대선 당시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새 정부는 ‘이재명 정부’가 아니라 ‘통합정부’라 하겠다고 명동 출정식에서 천명했다. 이는 김대중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참여정부’의 전통과 맥을 잇는 것이었고,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와 같은 정부 칭호 방식과는 차별적이었다.
여기서 통합 정부는 국정 운영의 수단이라기보다 한국 민주주의의 완성도를 높이는 이정표이다. 통합정부는 유럽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대연정과 소연정으로 민주주의 정부 형태를 실현하고 있다. 통합은 상생·양보·포용을 뜻하는 상식의 언어가 아닌 사회과학적 차원의 민주주의 원리를 말한다.
통합정부는 여야 간의 갈등을 줄이고, 인물 기용과 정책 도입에서 진영 구분 없이 운영하는 것을 출발 조건으로 한다. 그 내용은 공룡 같은 행정 부처를 전문 분야별로 재분해해서 DJ·참여정부의 기본 정신으로 원상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며, 명실공히 장관책임제를 도입하고 전체적인 조율과 융합 또는 통합은 실질적인 책임총리제로 도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사 탕평책의 정상화와 제도화를 위해 언젠가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인사위원장 겸직을 폐기하고 독립된 중앙인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다.
박근혜 탄핵 직후, 문재인 전 대통령도 선거운동 마지막 유세장, 수원 화성에서 정조의 통합 정치를 꼭 하겠노라고 다짐했으나, 임기 내내 통합 정치의 물꼬를 열지 못하였고 결국 정권 교체를 당하고 말았다. 다음 정부는 통합 정치로 선거도 이기고, 통합정부도 실천하여 최초의 성공하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박상철 (사)미국헌법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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