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가 민주주의 선진국이자 국민소득 3만 불의 경제 선진국 대한민국을 하루 만에 40년 전 과거의 후진국으로 후퇴시켰다. 그날 밤 야당과 시민의 힘으로 비상계엄 내란은 막아냈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내란이 끝났다고 보기도 힘들다.
국회를 ‘범죄 소굴’로, 비판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은 국회가 계엄해제를 의결하자 “국회 경고용 계엄이었다”는 황당한 변명을 둘러대다가 이제는 “내란이 아니다”라며 버티고 있다. 수사기관들은 용산에서 장어 파티를 즐기고 있는 내란 수괴를 체포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을 지연시키거나 무산시켜 집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 사이 경제는 속절 없이 무너지는 중이다. 국민들의 분노와 불안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반(反)역사적 사태는 윤석열 내란범죄 일당이 갑자기 일으킨 정변이 아니다. 11월부터 모의했다는 보도가 있지만 아닐 가능성이 높다. 계엄군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신속한 국회 장악에 실패해 3시간여 만에 비상계엄 상황이 끝나버렸지만, 그렇다고 윤석열 일당이 내란 기획과 준비를 짧은 기간 허술하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어떻게 눈치 챘는지 모르겠으나, 수개월 전부터 야당은 ‘윤석열 계엄준비설’을 제기해왔다. 8월 경 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이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고 한 달 뒤 윤석열이 ‘충암파’ 후배 국방장관과 국군방첩사령관(옛 기무사령관)을 임명하자 의혹은 더 커지고 확산됐다. 거슬러 올라가서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무려(!) 지난해 말 “윤석열 정권이 22대 총선에서 (야당에) 조금만 유리한 결과가 나와도 계엄을 선포하고 독재를 강화하려고 할 것”이라고도 했다. 1년 만에 그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실과 국힘당은 ‘그런 계획 없다’고 시치미를 뗐다. 내란 수괴가 된 윤석열은 이재명 대표에게 “무책임한 선동이 아니라면 당 대표직을 걸고 말하라”고 했고 내란 주모자 김용현 국방장관은 인사청문회에 나와서 “계엄준비설은 거짓 선동”“우려 안하셔도 된다”고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
대부분의 언론들도 콧방귀를 뀌면서 야당의 의혹 제기를 ‘괴담’ ‘망상’이라고 조롱하고 비아냥댔다. 최대 발행부수라는 한 극우 매체는 “국민을 바보로 아는 ‘계엄령 괴담’”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여러 ‘친윤’ 매체들도 민주당을 향해 “국민을 개돼지 수준으로 낮춰보면서 현혹하는 혹세무민 선동이 개탄스럽다”고 했고, ‘계엄준비설’을 강하게 제기한 김민석 의원에게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냐”며 조롱했다.
언론과 기자는 작은 단서라도 있다면 묻고, 캐내고, 확인하는 게 일이다. 만약 주류 언론들이 민주당의 의혹과 경고를 조금이라도 귀담아 듣고 취재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그냥 무시하고 조롱만 할 게 아니라 예의주시하면서 의혹의 근거를 추적해나갔다면? 한 번이라도 윤석열에게 “꿈 깨시오”라고 경고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덧없지만, 돌아보지 않으면 개선도 발전도 없다. 새빨간 거짓말로 국민을 속인 내란범 일당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취재도 않고 야당의 경고를 ‘망상’ ‘괴담’ ‘선동’으로 몰아붙인 언론의 게으름과 무책임도 단죄해야한다. 이렇게 엄청난 국민의 고통과 역사의 후퇴를 미리 막아내지 못한, 아니 어쩌면 부추기기까지 한 언론에게도 책임을 물어야한다.
김성재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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