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정책금융기관은 노동조합, 언론, 시민단체와 건설적인 소통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자금 집행에 나서야 합니다. 기관의 설립목적을 달성하려면 무엇보다 정책 대상자의 시각에 의거해 비판적 감시와 지적을 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온당한 문제제기에 대응·반응하면서 정책방향을 수정·개선하는 것은 정책금융기관의 중요한 책무입니다.
이같은 관점에서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는 11개 정책금융기관의 민원 및 개선요구에 대한 수용 노력과 해명 및 개선노력을 중심으로 △노조 △시민단체 △언론사와 관계를 살펴봤습니다. 종합해서 보면, 아쉽게도 각계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관들은 정부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한 모습이었습니다. 연간 수백조원에 달하는 정책자금을 집행하는 데도 불구, 기관을 구성하는 노조나 감시 기능을 가진 언론 및 시민단체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려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옥상옥' 기재부 지침에…정책금융기관 '복리후생' 개선 어려워
먼저 정책금융기관이 노동조합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정책금융기관의 효율적인 예산 집행과 순조로운 사업 운영은 따지고 보면 결국 직원들의 손에 달려있는데요. 직원들을 대표하는 이들이 바로 노조입니다. 노조는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조직의 불합리한 정책이나 방향에 대해 개선을 요구함으로써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직·간접적으로 기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정책금융기관의 경우 노조와 원활한 소통은 중소벤처기업 육성 및 국가 경쟁력 제고에 이바지하는 일과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각 기관들은 매분기마다 노사 협의회를 열고 정기적으로 의견을 나누고는 있습니다. 기관별 노사 협의회 결과는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공시된 회의록을 통해 열람 가능한데요. 다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직원들이 공적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인 임금 및 복지에 대한 소통은 미흡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정부의 획일적인 가이드라인이 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매해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는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에 따라 정책금융기관 직원들의 임금과 복지 수준이 결정되는 구조인데요. 기재부 지침 아래 대부분이 결정되므로 노조의 운신의 폭이 좁고, 이로 인해 정책금융기관의 복리후생이 낙후되는 양상입니다. 이 때문에 결국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가이드라인이 노조를 옥죈다는 비판도 무성합니다.
한 정책금융기관 노조 전문가는 "노조가 상대해야 할 정책금융기관의 사용자는 정부나 다름 없다"며 "기재부 예산 운용지침에 따라 인건비, 복리후생이 이미 다 정해져서 내려오기 때문에 사실상 노조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기관 역시 기재부 지침을 따라야 하는 입장으로, 임금과 복지에 대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기재부 경영 평가에 따라 성과급이 연동되기에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A 정책금융기관 노조 관계자는 "노사가 아무리 소통하더라도 기재부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에 집행부 성과나 직원들을 위한 교섭 결과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B 노조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임금 관련 예산 등 모든 부분이 기재부의 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사 측인 경영진도 합의할 수 있는 범위가 많지 않다"며 "노조 입장에선 공공기관의 노사 협의는 의미가 없으니 정부와 협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습니다.
정부의 지침이긴 하나 정책금융기관의 복지는 공무원 수준에도 맞추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C 노조 관계자는 "노사가 결과를 도출하더라도 기재부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끝"이라며 "부족한 복리후생은 적어도 공무원 수준만큼 따라가고 싶다고 기재부에 요구하지만 들어주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양대노총(한국노총,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양대노총 공공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책금융기관 노조가 소속된 상급 노조가 일방적인 기재부 지침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배경입니다. 양대 노총(한국노총·민주노총) 공공부문 노조 공동대책 위원회(공대위)는 지난해 기재부 예산 지침을 두고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공대위는 기재부 지침이 헌법의 노동3권 중 '근로자의 단체교섭권'과 2022년부터 국내 발효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제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에 관한 사항)를 위배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상급 노조를 통해 헌법소원까지 불사했지만 헌법재판소는 2년이 지나도록 재판을 미루고 있습니다.
"임금·복리후생 제외 분야 소통, 비교적 원활"
다만 임금과 복리후생을 제외한 부분에서의 노사 협의는 비교적 원활한 것으로 보입니다. 산은의 경우 현재 부산 이전을 두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요. 부산 이전을 제외한 직원 권익 향상을 위한 협의는 순조롭다는 평가입니다. 산은 노조 관계자는 "격지로 발령이 난 직원이 일주일 중 하루는 서울에서 원격 근무를 할 수 있는 '스마트 워크 센터' 제도는 노사 간 협의를 통해 활성화할 수 있는 이슈"라며 "기재부 가이드라인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직장 내 괴롭힘, 성범죄 문제 등은 노사 협의로 해결하는 추세"라고 말했습니다.
산업은행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 반대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산업은행 노동조합)
최고경영자(CEO) 성향에 따라 노사관계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C 노조 관계자는 "대표이사에 따라 부침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노사 협의는 원만한 편"이라고 밝혔습니다. B 노조 관계자는 "기관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지금까진 문제없이 협의를 하고 있다"며 "다만 정부 지침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노조는 노사 협의 외에 기관장이나 임원 인사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며 기관 운영에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신보 노조는 지난 2020년 9월 특정업체 밀어주기 의혹이 제기된 신대식 상임감사 연임을 반대 의사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도 2018년, 17대 이사장 자리에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이 내정된 것에 대해 낙하산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019년 당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두고 신용보증기금 노조가 임명 촉구 성명을 발표한 일도 있었습니다.
언론 대응, 정부 정책 대변 일변도
언론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CEO 간담회 개최 및 언론과 소통을 통해 기관의 정책과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왜곡 없이 상세히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은 정책금융기관에게 무시할 수 없는 파트너입니다. 강석훈 산은 회장, 최원목 신보 이사장, 유병태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 등 주요 기관장은 취임 이후 1~2번가량의 간담회를 열고 언론과 소통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다만 윤희성 수출입은행장은 2022년 취임 이후 3년째 간담회를 열지 않아 업계 안팎으로부터 소통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원목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지난 5월27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열린 신용보증기금 창립 48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송필 미래전략실장, 김남수 경영기획부장, 최원목 이사장, 정현호 신용보증부장, 최태진 자본시장부장. (사진=신용보증기금)
보도 해명·설명 자료 배포도 정책금융기관과 언론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반적인 보도자료는 기관 홍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해명·설명 자료는 언론 기사에 대한 해명과 설명이 담깁니다. 올해 현재까지 해명·설명 자료를 배포한 기관(2024년 11월 7일 기준)은 HUG(9건), 산은(4건), 무역보험공사 (3건), 수은(2건), 한벤투(1건)등이 있습니다. 지난해는 HUG가 15건, 산은은 13건, 수은은 1건, 주금공은 1건의 해명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다만 정책금융기관이 적극적으로 언론 기사에 대응하는 주제는 대부분 정부 정책과 관련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윤희성 한국수출입은행장이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조폐공사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가장 많은 자료를 배포한 HUG는 전세보증, 전세보증보험, 든든전세주택 등 HUG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 사업에 관한 문제제기에 대응했습니다. 지난해에도 HUG는 15건의 해명·설명 자료를 배포했는데요. 전세 사기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전세보증 업무를 맡고 있는 HUG에 대한 관심과 감시에 대한 필요성이 두드러졌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주금공은 지난해 2월 특례보금자리론 관련 보도가 나오자 "정해진 사실이 없다"는 해명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지난 9월 체코 원전사업 금융지원 관련 보도에 대해 설명 자료를 배포했다. 사진은 수출입은행 설명 자료 갈무리 (사진=수출입은행)
무보와 수은은 체코 원전 수주 사업에 금융 지원을 약속했다는 언론 보도에 즉각 해명했습니다. 양 기관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자료를 공동으로 배포하는 등 체코 원전과 기관에 대한 지적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체코 원전 사업은 윤석열 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사업으로, 원전 수주 과정에 대해 논란이 컸던 만큼 발 빠르게 움직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지난해 수은이 유일하게 배포한 자료는 폴란드 방산 2차 수출계획과 관련한 내용이었습니다. 1차 방산 수출 계약 이후에도 지속적인 금융 지원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내용으로 이 역시 양국 정부가 연관된 이슈였습니다.
산은은 정부 정책뿐 아니라 산은 재정, 업무 등 언론 보도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올해는 지난해 말 △태영건설 워크아웃(채무 개선 작업) △
삼성전자(005930) 반도체 설비투자 관련 대출 △도이치모터스 대출 △녹색기후기금(GCF) 사업 등 시장과 밀접한 보도에 대해서 해명했습니다. 지난해에도 △무바달라 펀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 △한국전력 보유 지분 △아시아나항공 매각 등 13건의 해명 자료를 냈습니다.
산은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기관들의 해명자료는 정부 정책과 관련한 보도에 적극 반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벤투는 지난 8월 대표이사 지원서 접수 기간 중 특정 인물로 대표가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사실이 아니라고 즉각 해명했습니다. 지난해 단 한 건의 보도해명자료도 내지 않은 것과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한벤투 대표는 지원서 접수 이후 중기부와 대통령실 승인을 받아야 결정되는데요. 최종 결과에 앞서 내정 기사가 나온다면 정부의 인선 과정에서 투명성, 낙하산 의혹이 제기될 수 있어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시민단체, 자금 집행·소비자 피해 감시…"기관과 소통 부재"
시민단체와 정책금융기관 간 소통은 전반적으로 미흡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정책금융기관은 국민의 세금 및 정부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감시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민단체는 기관이 정부 정책에 휘둘려 자금을 유용하거나 국민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초래한 사건 등에 대해 여론을 조성하고, 공론화시켜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정부가 공급망 기금법에 따른 기금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을 악용하고 있다며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수은은 "수은이 발행하는 공급망 채권은 정부 보증이 붙어있기 때문에 정부 신용을 쓴다. 기금 계정은 수은과 분리돼 있고 수은 회계에도 잡히지 않는다"며 경실련 지적에 반박했습니다. 금융소비자 권리 보호에 힘쓰는 금융정의연대는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원금 전액 반환 촉구 투쟁에 동참하며 기업은행이 엄중한 질책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와 금융정의연대 관계자들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피해자들의 상황과 해결책 등을 요구하는 232회차 투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만 시민단체가 직접 발굴하거나 제보에 기반한 이슈를 제외하면 정책금융기관과 소통은 전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정부 산하 공공기관과 소통 및 협업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요.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국회 자료 분석 등 국회가 요청할 때 협업을 하지만 기관과 소통은 거의 없고, 제보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따져가기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경실련 관계자는 "내부 금융개혁위원회가 각 기관의 이슈, 추이를 대략적으로 살피고 있다"면서도 "공적자금 투입,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을 보고 있으나 기관과의 직접적인 소통은 쉽지 않고 가끔 노조를 통해 소식을 접하는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정재호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장은 "협업은 곧 ESG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언제부턴가 ESG 경영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아마도 눈앞에 닥친 기후위기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자본주의 운동이 그간의 모든 화두를 집어삼키는 언어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정책금융기관의 본령이 자금공급 플랫폼 역할인데 고유한 ESG 의제는 무엇으로 설정해야할까? 생각해볼 문제다. 의제가 흔하고 많이 있지만 '국회~감독부처~기관~시민단체~노동조합~언론의 견제와 균형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같다. 낡고 늙은 관행과 주주 자본주의 닮은 척하는 인식이 ESG 진일보를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앞으로 집요하게 집중적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습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