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로 한국군과 주한미군 동시 감축을 추진했다. 1954년에 맺은 한미 합의의사록에 따라 미국은 한국군 유지비도 떠맡았는데 이에 따른 재정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서였다. 이승만 정부는 이에 반발했고 대응책으로 한국군의 해외 파병을 추진했다. 한국군이 해외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구실을 한다면 미국이 한국군을 감축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승만 정부는 1954년과 1958년 한국군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파병하겠다고 제안했다. 1959년에는 라오스 내전에 개입할 의사를 표명하고 국방부 정보기관 책임자 이후락을 비밀리에 라오스에 보내 현지 조사를 하도록 했다.
1961년 11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는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먼저 제안했다. 미국이 베트남에 본격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으니 미국이 파병을 요청할 이유가 없을 때였다. 박정희가 한국군 감축에 얼마나 큰 부담을 느꼈는지를 알려주는 사례다.
상황이 바뀌어 존슨 행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동맹국이 참전하라고 독려하고 나섰다. 박정희 정부는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베트남 참전을 통해 한국군은 장비를 현대화했으며 군인들이 고액 전투수당을 받아 고국에 부쳤다. 한국 경제는 베트남 전쟁 특수에 힘입어 파병 기간 연평균 8% 고도성장을 했다. 파병을 통해 자유 세계를 지킨다는 명분과 함께, 안팎으로 이런 요인들이 작용했다.(박태균 서울대 교수, 『베트남 전쟁』)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돕기 위해 병력 1만2천명을 파병하기로 했다고 국가정보원이 발표했다. 그중 3천명은 러시아 극동 연해주로 이동해 훈련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군 파병’은 우크라이나와 한국 정부가 발표했지만, 북한과 러시아는 부인하며 미국은 “북한군이 러시아로 이동했다”는 수준에서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정보가 맞는가를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국정원 정보가 맞다면 북한은 외화 획득과 군사 장비 현대화라는 실익을 일차적으로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러시아군은 계약제 병사한테 3천~5천 달러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북한군 병사들이 비슷한 급여를 받아 본국으로 송금하면 북한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북한군 병사들이 전선에 투입될 때 러시아제 최신 장비를 받을 수도 있다. 북한이 외국 전쟁에 참여해 경제와 군사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국가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군 해외 파병’은 우리한테 안보를 더욱 걱정하게 만드는 사안이다. 정부 차원에서 면밀히 상황을 검토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 거론하는,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비롯한 살상 무기를 지원한다거나 우리도 군사 요원을 파견하자는 생각이 맞는지에는 의문이 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 사무총장과 전화 통화에서 공동 대처를 제안했는데, 이것도 가볍고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을 준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사실상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해 가을 우크라이나 쪽이 벌인 ‘대반격’은 실패했고 러시아가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 1/5쯤 되는 동부 지역을 장악하고 굳히기에 들어간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 후보가 11월5일 선거에서 당선되면 전쟁을 하루 만에 끝내겠다고 공언하는 점도 중요한 변수다. 미국이 발을 빼면 전쟁은 금세 끝나고 만다.
북한은 이런 정세를 읽고 발 빠르게 움직여 전리품을 챙길 심산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발 빠르게 행동해 얻어낼 이익이 있나? 보이지 않는다. 곧 끝날 전쟁에, 우리가 섣부르게 달려들었다가 발걸음이 꼬여 역풍을 맞을 가능성은 있다. 북한-러시아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되 대응은 신중히 해야 한다.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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