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재벌 승계 과정에 지배력 약화로 귀결되는 상속세 이슈가 경영권 분쟁 등 사회적 파장을 야기합니다. 당정은 밸류업 혜택과 상속세 완화 방안으로 재벌 승계 문제를 풀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야당을 비롯한 시민사회와 부자감세 갈등으로 충돌하는 양상입니다. 재벌집단은 상속세 문제로 승계가 어려워지자, 경영권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고 당정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서만 고착화된 재벌세습 문제에 대한 비판적 여론도 높아지는 형국입니다.
상속세에 흔들리는 재벌 구도
15일 재계 및 당정 등에 따르면 근래 격화된 고려아연 등 경영권 분쟁은 원인을 따져보면 상속세와 닿습니다. 고려아연 내 지분 구조는 영풍의 법인 지분이 많으며 최윤범 회장은 개인 지분이 많습니다. 이에 최 회장이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영풍에게 유리해집니다. 그 와중에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은 최 회장이 부족한 지배력을 메꾸고자 고려아연을 사유화했다고 주장하며 공개매수로 선공했습니다.
전날 마무리된 MBK측 공개매수는 약 5% 이상의 지분을 추가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로써 영풍과 MBK 측은 고려아연 내 모두 40% 정도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이들은 이 정도 지분이면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여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최 회장이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을 통해 벌이는 대항공개매수는 법원 가처분으로 막겠다는 방침입니다. 고려아연 측이 기존 공시대로 매수한 자사주를 모두 소각한다면 영풍과 MBK 측 40% 지분율도 더 오르게 됩니다. 경영권 분쟁 양자 간의 표 대결까지 갈등은 장기화 되는 국면입니다. 해당 분쟁은 동업관계였던 장씨와 최씨 양가 문제이나 공개매수 과정에서 고려아연의 재무부담이 커지는 등 자본시장과 주주에게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습니다.
상속세와 연결된 경영권 불안은 주요 그룹들에게도 잠재돼 있습니다. 삼성은 상속 전후 자사주 소각과 배당확대로 상속세 재원을 마련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총수일가가 연부연납 중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서 지배력이 약화됐습니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율을 회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지배구조 개편설도 줄곧 제기되는 중입니다. 특히 삼성물산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자산을 키워, 이를 활용한 지배력 강화 실탄을 마련할지 관심이 쏠립니다.
SK그룹은 1조3808억원을 분할재산으로 인정한 이혼소송 2심 재판 결과가 제5공화국 시절 비자금 논란까지 번졌습니다. 최태원 회장의 지배력 약화 이슈로도 부각됩니다. 장래 상속, 증여세를 낼 것까지 고려하면 다음 세대로의 지분 승계 구도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명예회장으로부터 정의선 회장이 아직 지분 승계 전입니다. 상속세 문제가 직접적 현안이며, 순환출자로 지배력을 유지하는 문제로 지배구조 개편 이슈가 상존합니다.
LG그룹은 가족간 상속분쟁이 발생한 가운데 영국계 실체스터가 지분을 확대해 3대주주로 등극한 게 주목됩니다. 사측은 우호 주주로 밝혔지만 실체스터의 지분 확충 의도가 의문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밖에 쉰들러와 경영권 분쟁 후 잠재적 불안요소가 있는 현대그룹, 강제지주전환 이슈가 따라붙는 DB그룹 등 재계 승계가 활발해진 무렵, 지배력 약화 문제도 광범위하게 퍼졌습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체코 순방 행사에 참석한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 등. 사진=연합뉴스
“상속세 완화는 초부자감세”
지배력 약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편법도 늘어납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공시대상기업집단 내 사익편취규제 대상 기업 숫자는 올해 더 늘어났습니다. 정부는 사익편취 문제가 코리아디스카운트 원인 중 하나로 인식하면서도 상속세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세금을 낮추려 합니다. 하지만 상속세를 낮춰도 경영권 분쟁이나 계열분리, 개인자산 증대 등 사익편취를 낳는 유인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올해 기업집단 현황공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주식지급 약정 체결 내역에서는 총 17개 기업집단이 성과 보상 목적으로 동일인, 친족 및 임원과 417건의 주식지급 약정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같은 문제도 상속세 완화만으로 해결될지 회의적입니다.
현정부 들어 해외 자회사 배당 익금불산입, 수출 목적 내부거래 감세를 비롯해 최근 상속세 완화 추진까지 부자감세 논란이 불붙었습니다. 심지어 밸류업에 포함된 세제 인하 혜택도 비슷한 논란에 불을 지핍니다. 밸류업은 법인이 행하는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에 따른 인센티브로 감세해 줍니다. 하지만 감세 혜택이 법인 대주주에게 이뤄집니다. 또 가업상속공제를 중견기업까지 확대해 상속세를 면제해주는 방안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에 중견기업 규정이 낮춰져 대기업 계열사까지 수혜가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이처럼 상속세를 둘러싼 부자감세 논란은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화두가 됐습니다. 야당과 정부여당간 갈등이 드러났습니다. 기획재정부 국감에서 정일영 기재위 위원(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속, 증여세 개편 추진 관련 “향후 5년간 18조6000억원 상위 2%에 혜택의 95%가 돌아가는 걸로 파악하고 있다. 총 상속발생인원의 0.03%, 100명이 총 상속세액의 60%, 상위 2%에 속하는 7180명이 총 상속세액의 95%를 부담하기 때문에 이것을 줄여주는 것은 결국 부자감세가 아닌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상속, 증여세는 안 고친 지가 25년이 됐고 이 부담이 여러 중산층에게도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또 진성준 위원(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국회에서 부자감세란 지적을 계속해왔는데 정부의 역동경제 로드맵이나 세제 개편 관련 계획 보면 소득 격차, 부의 격차 개선 노력보다 오히려 초부자들, 상위 1%에 들어가는 거대 자산가들에게 혜택 집중시키는 감세정책만 발표, 추진해왔다. 이 (양극화)구조적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역행하는 게 아닌가”라고 질타했습니다. 이에 최 장관은 “윤석열정부가 부자감세 추진했다고 주장하지만 거기에 동의할 순 없다”며 “법인세 같은 경우 결론적으론 중소, 중견기업에도 많은 혜택이 갔다. 그분들 세금 자체가 대기업보다 적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고, 투자와 고용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를 대기업이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에 혜택이 간 건 맞지만 대기업 자체가 부자라고 보긴 어렵다. 거기에 고용인도 있고 그분들 투자에 따라 혜택 주는 거라 부자감세라고 규정짓기는 무리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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