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먼 쇼'에서 주인공 트루먼은 자신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의 삶은 사실 거대한 TV 쇼의 일부로,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연기자이며, 그들의 반응은 철저히 조작된 것이다. 영화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며,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의 가능성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나도 가끔 나 자신을 일종의 '트루먼 쇼'에 집어넣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내가 읽는 수학 논문들이 그럴듯하면서도 교묘한 방식으로 나를 속이려 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수학은 흔히 다른 것보다 우리가 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한 논문의 결과가 다른 논문의 결과에 의존하고, 그것이 또 다른 논문의 결과에 의존하는 식으로 복잡한 논리의 의존성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결국엔 내 정신도 아득해지곤 한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내가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수학조차 이럴진대, 내가 정말로 믿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가끔 해보는 이런 상상은 내 삶에 긴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영화 '매트릭스'는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질문을 탐구한다. 영화는 인간이 실제로는 거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이 프로그램된 환상에 불과하다는 설정을 기반으로 한다. 주인공 네오는 자신이 진짜라고 믿었던 세계가 허구라는 사실을 깨닫고, 진정한 현실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매트릭스'의 설정은 단지 영화적 상상에 머물지 않는다. 영국 옥스퍼드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은 2003년 "우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는가?"라는 논문에서 이 질문을 진지하게 다뤘다. 그의 논지는 이렇다. 우리의 문명이 고도로 발전하여 언젠가 인류의 역사를 수많은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이미 그런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는 컴퓨터가 위치한 우주의 물리학은 우리가 경험하는 물리학과 다를 수 있으며,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어떤 의미에서는 실체일지라도, 근본적인 실체가 아닐 수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어 왔으며,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 역시 가끔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에 있는지 아닌지를 알아낼 방법이 있을지 고민해 보았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좋은 답을 얻지는 못했다.
이런 뜬구름 잡는 듯한 같은 이야기들이 단순히 철학적 차원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컴퓨팅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믿는 현실의 경계를 흐리게 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현실을 재구성할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생성형 AI가 쏟아내는 글, 이미지, 비디오는 우리가 진실을 확신하기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계속해서 정교해지고 있으며, 우리가 경험하는 정보의 진실성과 실재성을 판단하기 점점 더 어렵게 만든다. 뉴럴링크와 같은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은 우리의 인지와 경험을 직접적으로 재구성할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가상현실은 물리적 현실과는 다르지만, 감각적으로는 실제처럼 느껴지는 세계를 창조해 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진정한 실체인지, 아니면 단순한 기술적 산물인지에 대한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처럼 '실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계속해서 유효하며,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 더욱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이철희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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