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SK와 두산 등의 합병 논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2015년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로직스) 행정소송 1심 판결도 쟁점을 더합니다. 법원은 감독당국이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보고 로직스 손을 들어줬지만 2015년 회계처리는 비정상적이었다고 판시했습니다. 로직스가 '반쪽승리'해 이재용 회장 재판에 미칠 영향은 미지수입니다. 미국에선 아예 이런 문제를 피하고자 자발적 MOM(소수주주 다수결, Majority of the minority Voting)을 하며, 최근 현안에도 필요하단 지적이 나옵니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로직스 1심 승소 판결을 두고 논쟁이 이어집니다. 분식회계 처분이 취소됐기 때문에 혐의를 벗었다는 인식과 법원이 2015년 분식회계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 이재용 회장 2심에 부정적이란 관측이 충돌합니다.
먼저 행정법원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로직스가 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를 바이오젠과 공동지배함에도 종속기업 처리한 회계를 로직스의 재량권 내 허용돼 위반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이에 대한 증권선물위원회의 처분은 잘못됐다는 판결입니다. 이에 대한 사실 오인이 다른 혐의에도 섞여 나머지 처분도 모두 잘못됐다고 봤습니다.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던 2015년 로직스의 회계변경처리에 대해서도 분식회계 여부를 떠나 처분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재판부는 그러나 2015년 회계변경처리는 비정상적이라고 판별했습니다. 이 부분은 로직스가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당시 에피스의 가치 상승으로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것처럼 보였다는 게 로직스 주장입니다. 이를 근거로 콜옵션을 부채로 인식했다면 로직스는 완전자본잠식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로직스는 에피스를 종속회사가 아닌 관계회사로 변경해 단독지배력을 상실했다고 회계처리했습니다. 이로써 콜옵션으로 인한 처분이익 4조5436억원을 계상했습니다.
이는 이후 로직스를 보유한 제일모직과 삼성전자를 보유한 삼성물산 간의 부당합병 비율 논란을 파생해 합병취소 소송 등으로 번졌습니다. 이재용 회장도 승계 목적으로 이뤄진 분식회계, 부당합병이란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입니다. 법원의 불법 취득 증거 능력 불인정 끝에 이재용 회장이 1심 전부 무죄로 승소했지만, 2심에선 이번 로직스 판결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1심 패소한 금융감독원은 행정판결 직후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면서 “로직스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변경하는 과정이 정상적인 절차가 아니라고 본 점은 의미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배임죄 폐지론을 시사했던 이복현 금감원장도 최근 SK, 두산 합병 논란에다 티메프 사태까지 자본시장 논란이 잇따르자 강경한 태도로 바꿨습니다. 이 원장은 최근 “제도 개편 노력에도 여전히 지배주주 이익만 우선시하는 기업경영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기업의 철저한 인식 전환을 위해 이사 충실의무와 관련해 원칙 중심의 근원적 개선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사 충실의무 도입 추진 가능성을 시사한 것입니다.
소액주주들이나 학계에선 그러나 상법상 이사 충실의무 강화만으론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합니다. 조항 자체가 모호해 고무줄 식이고 소액주주가 피해사실을 입증할 수단도 부족하단 이유에서입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선 대주주가 합병에 따른 이해충돌을 피해가려고 자발적으로 MOM을 하게 된다"며 "의무가 아님에도 법적 분쟁이 따를 것을 우려해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에서 분쟁은 주주조송으로 이뤄집니다. 소송이 활발한 이유는 “디스커버리제도(증거개시제도) 때문에 (피해사실을)입증하기 어렵지 않고 징벌배상 때문에 배상액도 많을 수 있고 (우리와 달리)배상이 주주들에게 직접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박 교수는 분석했습니다.
반대로 보면 디스커버리나 징벌 배상이 존재하지 않는 국내에선 대주주의 뜻대로 합병을 관철할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합니다. 하지만 삼성 합병으로 이재용 회장이 재판에 시달리는 상황은 국내서도 자발적 MOM의 필요성을 상기시킵니다.
한편, SK 합병승인 주총은 8월27일, 두산은 9월25일 열립니다. 주총을 앞두고 금감원이 합병 정정신고서를 요구하는 등 과정은 순탄치 않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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