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 휴가를 다녀왔더니 세계 경제가 말 그대로 '난리'가 났습니다. 미국발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전 세계 금융·자본시장을 덮치면서 지난주 '블랙 프라이데이'에 이어 이번 주 '블랙 먼데이'까지 도래, 시장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이번 주 사상 최악의 월요일을 보낸 한국 증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날 개장부터 급락세를 보이던 코스피·코스닥 시장엔 '서킷 브레이커'(주식매매 일시 중단)이 발동됐고, 결국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에 우리 시가총액은 하루 새 235조원이나 증발했고, 1400만 개미 투자자들은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물론 한국뿐 아니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주요 증시가 모두 폭락하며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이후 다행히도 이틀 동안 아시아 주요 증시는 반등하며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공포에 질린 비이성적 투매가 잦아들면서 하루 만에 반전을 보였지만 전날엔 폭락 장세를, 다음날엔 급등세를 보인 글로벌 증시를 보고 오히려 개인적으로 시장 변동성에 '공포'를 느꼈습니다.
뼈아픈 대목은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감기', '내려갈 때는 폭삭, 올라올 때는 찔끔'이라는 한국 주식시장의 허약한 체질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는 점입니다. '블랙 먼데이' 이후 이틀 동안 반등하긴 했으나, 역대 최대 하락분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는데요. 이에 비해 같은 상황을 겪은 일본 증시는 전날 폭락분의 70%를 회복하는 단단함을 보이면서 씁쓸함을 남겼습니다.
더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할 것은 선진국과 신흥국이라는 위상 차이가 엿보였다는 점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지수 회복력 차이에는 결국 선진국과 신흥국의 위상이 배경에 깔려있는데요. 일본은 선진국 지수를 추종하는 거대한 펀드 자금이 유입된 반면, 한국은 신흥시장 소속이어서 이 같은 자금 유입 혜택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선진국 지수에 포함되려면 결제시스템, 배당제도 등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한국은 2008년부터 수 차례 선진지수 편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한국 증시의 허약한 체질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정치권에선 금융투자소득세의 폐지론이 재부상하고 있습니다. 정작 '블랙 프라이데이'와 '블랙 먼데이'를 보낸 지난 2일과 5일엔 증시가 폭락하는데도 여야는 '노란봉투법'을 둘러싸고 싸우기만 했지 금융시장 불안엔 강 건너 불구경만 했습니다. 뒤늦게 증시 불안이 커지면서 금투세 시행의 전면 재검토를 꺼냈지만, 이마저도 여야의 정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일단 머리를 맞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하는 모습은 기대하기 어려운 걸까요.
평소엔 싸우더라도 내우외환이 있을 땐 정쟁을 멈추고 머리를 맞대 위기를 극복하는 게 정상적인 국회의 모습입니다. 당론도 못 정한 채 "대통령은 어디에 있느냐"고 변명하는 거대 야당이나, 이때다 싶어 "토론회 하자"고 제안하며 이슈 선점에 골몰하는 소수 여당이나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일본 증시의 단단함은 치열한 고민 끝에 난제를 해결한 결과물입니다. 갈 길이 먼 한국 증시 앞에서 정쟁의 시간조차 아깝습니다. 여야는 힘겨루기에 몰두할 때가 아니라 바깥에서 몰려오는 파도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박진아 정책팀장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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