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떼려다 혹 붙인다던가. 국힘 당 대표전 참가자들이 왜 저 이전투구를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읽씹(문자 읽었으나 무반응)’ 소동에도 여론조사 상 한동훈후보 지지율은 별 타격이 없는 모양이다. 김 여사가 보낸 5통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됐다. 구구절절 극진하고 절박한 문장들이다. 답신이 없는데도 무려 열흘간이나 그렇게 극진하게 써서 보낼 정도면 사과를 해도 열 번은 더 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극진하고 정중해보인다.
국민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진짜 모르는지 자해극 가담자들에게 묻고 싶다. “뭐 이런 걸로 치고받나. 당 대표 하겠다는 사람들이 한가한 건가, 한심한 건가.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진짜 모르나”. 설마 모르리라고 생각해서 이런다기에는 너무 저급하고 너무 집요하다. 오죽하면 ‘무슨 큰 그림이 있으니 이렇게 사생결단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다.
읽씹이 무슨 대단한 사상투쟁이나 정책대결이라도 되나. 충성심 입증기회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당 대표 선거의 결정적 이슈라고 생각들 하나. 설마! 이렇게 누워서 침뱉고 모든 걸 까발리며 자해하면, “꼭 성공시키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다짐하던 현 정권은 뭐가 될까. 끝간 데 없이 저러니들 목숨걸고 지키겠다는 정권의 신뢰와 성공에 어떤 도움이 된다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황당해서 귀 닫고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자세 고쳐잡고 묻고싶어지게 만들었으니 “자해극은 성공”이라고 답할 셈인가.
읽씹이 총선패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직도 민심을 모르는 것이고, 선두 주자를 떨어트리기 위한 것이라면 어설픈 정치공학이다. 특정인 낙선을 넘어 제거용으로 기획한 거라면 오로지 권력욕에 눈 먼 궁중암투극이고. 미안한 얘기다만, 이건 한 마디로 동네 골목대장들이 몰려나와 웃통 벗어 문신 드러내고 벌이는 자해극 수준이다. 중계방송되는 걸 뻔히 알기에 더 거칠어지는 후보 전원의 자해극. 국민이 왜 그런 걸 봐야 되나.
정당의 당 대표 선출은 대선후보 선출에 버금가는 주요 사안이다. 전개되는 양상으로는 국힘에 최소한의 상식조차 없어 보인다. “먹고살기 힘든데다 이런저런 사건사고로 흉흉하니 제발이지 시끄럽게나 하지 말라”는 항간의 말을 듣고서도 이럴 수는 없다. 나중에야 어찌 될 망정 당 혁신안이나 집권플랜같은 거 내걸고 장밋빛 대결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다 못해 그런 구태로 포장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과연 국힘답다. 과연 정직하다. 수권 능력도, 자세도 안돼있다는 걸 만천하에 광고하고 있는 꼴이니 ‘참어로’ 정직하다.
국힘과 용산의 총체적 난국에 대한 성찰과 진단/처방, 진정한 사과와 변화는 온데간데 없고, “문자를 읽고도 감히 씹었다”는 것만 남았다. 읽고 씹은 후보에게 사과하고 사퇴하라는 건데 그래서 얻는 것은 뭘까. 사퇴하지 않으면 “한동훈은 도리도 예의도 없는 망나니이니 떨어트려달라”는 주문인가. 설령 만에 하나 그렇게 되고 나면 남는 건 뭘까. 뭐가 남기를 기대하고 집단자해극과 린치를 연출하는지, 후보들의 바닥은 어디인지, 순진한 관객들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국정 담임능력이 없다는 걸 자백하는 건 솔직해서 좋은데, 저러니 민주당이 긴장할 필요가 없어져서 같이 하향평준화되는 건 아닐까. 정치가 이렇게 형편없으니 손해보고 답답한 것은 주권자이자 정치소비자인 국민이다. 손해배상을 어떻게 청구할지는 국민이 정한다. 정치권 전체가 받게 될 청구서는 가혹할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게 촛불의 교훈이다.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강윤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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