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지난 일이지만 마지막 공연장에서 음주뺑소니거짓말(공연 당시는 혐의자) 김호중 씨를 보고 일부 팬은 오열했다고 한다. 그냥 눈물 짓는 정도가 아니라 오열. 김 씨는 “승리하리라”는 취지의 노래로 화답했다고 하고. 일부 팬은 김 씨의 음주뺑소니사건을 ‘우리 별님(김호중)을 시기한 음모’라고 생각한다고도 한다. 이른바 광팬은 집단화되면 이렇게 비이성적이기 십상이다. 하긴 종교의 너울을 쓴 성폭력범 JMS 정명석을 감싸고 도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마는….
김 씨 구속 뒤 일부 팬이 “그동안 김씨의 선한 영향력 덕에 100억원이 기부됐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사정을 알고 보니 그중 최소 75억원이 복지기관에 보내진 앨범을 돈으로 환산한 금액이었다. 그 기부, 이런 구조다. ‘인기순위/앨범판매량 유지를 위해 팬들이 무더기로 산다-가수(와 소속사)는 이익을 취한다-산더미처럼 쌓인 앨범은 복지기관에 보내며 기부라고 홍보한다’. 1석2조, 아니 1석3조인가. 이쯤되면 팬심을 금전적으로 이용한 것 아닌가. 강매가 아니라 자발적 관행이라 치자. 문제는 이런 팬심이 사회상규나 합리성과 충돌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김호중 씨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는 “승리하리라”는 종교부흥회를 연상시킨다. 탄압-박해받는 선각자나 지도자라도 된다는 건가. 십자가라도 메고 끌려갈 운명에 처해있나. 그는 공연 후 범죄사실을 시인했다. 새빨간 거짓말이자 선동임을 알면서도 승리하리라고 외친 ‘가치 착란’이 어떻게 가능할까.
비단 김호중 씨 광팬뿐이랴. 무조건 감싸며 숭배하고 불리하거나 안좋은 얘기에는 눈 감는 광팬, 즉 빠가 도처에 많으니 김 씨 광팬을 꾸짖는 게 공평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좌우 극단 시사유튜브 장사치들에 환호하고 중독된 광팬/빠, 도처에 수두룩하다. 팬덤이라는 이름의 빠들. 가히 빠 전성기다.
논쟁적 이슈고 휘발성이 강하지만, 빠가 위험한 이유를 논증하기 위해 심오하고도 복잡한 논리까지 필요하지는 않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빠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남들이 ‘자기처럼 열렬히’ 좋아하지 않으면 멸시하며 낙인찍고 무리지어 공격해댄다. 그 폭력성이 위험한 것이다. 뜨뜻미지근하게 좋아하거나 가끔 조리갖춰 쓴 소리도 한다? 안된다. 그러면 바로 의심하고 회색분자(호칭은 시대별로 다양하다. 빨갱이, 사꾸라, 세작, 수박…)라며 공격한다. 역사는 그들을 전체주의자라고 기록했다. 그 전체주의자들, 머리에 뿔이 나거나 혹이 두세 개 달렸던가? 아니다. 보라색으로 맞춰 입은, 오열했다는 김호중씨 광팬들, 보라색 조끼 벗으면 똑같다.
이렇게 상식과 합리를 무시하고, 여차하면 떼지어 공격하며 극단으로 치닫다가 마지막 골목에 다다르면 어떻게 될까. 김호중 씨 광팬은 그래도 아직 남들을 공격하지는 않는 것 같다. 순한 편이다. 그들보다 위험한 빠가 많다. 하나같이 애국애족을 내세운다. 그리고, 자신은 빠가 아니라고 굳게 믿는다. 빠 의식과 행동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우리가 아니면 적’이라는 생각으로 무장하면, 종국은 전체주의다.
나 아닌 남, 우리 아닌 상대를 혐오하고 폭력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초등학교때부터 배우건만,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이구동성 동의하건만, 집단화되면 망각하고 무시해버린다. 그 순간 우리는 전체주의라는 지옥의 문고리를 열고 있는 지 모를 일이다. 전체주의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로 그 전체주의에 빠지는 경우를 본다. “욕하면서 배운다더니…”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슬픈 아이러니다.
이강윤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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