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원특검법 재의결은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민주당이 22대 국회 첫날 특검법을 다시 발의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공수처 수사가 진행 중에 있고, 다시 발의하면 새롭게 절차가 시작돼 시간이 걸린다. 또 그동안 정치권에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은 한숨 돌렸다. 그러나 승리가 아니고 간신히 방어했다. 2/3에는 못미쳤지만 압도적 다수의 의원들이 찬성했다. 국민들의 다수도 특검법 도입에 찬성하는 여론이었다. 야당의 정치적 공세가 확산시킨 면도 있겠지만, 대통령 스스로가 일을 키운 결과다.
국민들의 다수가 해병대원특검 필요성에 동조하는 것은 국방부와 대통령실의 대응이 명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이라 말하지만 사고 상황은 분명하다. 폭우 속 강물이 몰아치는 위험한 현장에 구명조끼 등의 안전장구도 없이 수색을 밀어붙여 수색에 동원된 해병대원이 희생된 사건이다. 무리한 수색을 명령한 지휘 책임의 문제다. 사단장 이하 8명의 지휘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해병 수사단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책임의 대상에서 사단장 등을 제외하도록 국방부 쪽에서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것이 야당을 비롯한 특검 추진 쪽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수사단장이 문제를 제기하고 국방부는 단장을 항명으로 징계조치하면서 일이 불거졌다. 야당 쪽에서는 ‘VIP 격노설’논란을 매개로 대통령의 개입 책임을 다그치고 있다.
공수처의 판단이 나오겠지만, 대통령이 비판여론에 먼저 호응해야 했다. 개입 논란에 답해야 한다. 개입했을 경우 군통수권자로서 적절한 역할을 했는지를 말해주면 된다.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의 채상병특검 질의응답에서도 이 부분은 전혀 언급이 없었다. 개입여부, 그리고 개입의 타당성여부라는 명쾌한 쟁점이 진상규명이라는 복잡하고 근원적인 의혹처럼 확산돼 있다. 사실 이태원 특검법도 비판여론에 둔감한 또는 개의치 않는 대통령의 태도가 결국 초래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정무적 잭임자였던 행안부장관이 국민의 분노를 담아내기는커녕 실언 논란까지 불렀다. 대통령은 개의치 않고 장관을 유임시켰다. 오히려 공항 영접 과정 등에서 격려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야당은 정부의 무책임을 성토하는 소재로 삼았고, 결국 특검으로까지 가게 된 출발점이었다. 물론 국가적 재난 등을 끝없는 정치적 공세거리로 활용하는 야당의 구시대적 정치전략도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비판여론에 호응하지 않는 대통령의 무책임한 리더십이 정쟁거리를 만들고 키워준 셈이다.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두고 어느 야당 대표가 ‘마이동풍, 동문서답, 오불관언’의 사자성어로 비꼬았다.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와 별도로 비판여론에 둔감하거나 부적절하게 대응하는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를 잘 짚은 것으로 본다. 이른바 ‘대파’ 논란 때도 그랬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별 게 아닐 수도 있는 ‘대파’ 논란이 끊임없이 확산돼도 명쾌한 해명이 없었다. 총선 당시 정부심판론의 소재가 됐다. 대파 가격 언급의 타당성 여부보다 논란에 침묵하거나 개의치 않는 대통령의 태도가 키웠다. 의혹을 키운 무책임한 리더십이다.
국정책임자는 국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 더구나 직접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책임있는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러나 윤대통령은 응답이 필요한 것에 제3자처럼 침묵했고, 엉뚱한 곳에 동문서답했다. 김건희 여사 관련 문제를 비롯한 대부분의 특검 쟁점들이 비슷한 경로에서 키워졌다. 대통령의 소통과 민주적 책임은 김치찌게 대접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국정 관련 사안에 책임있게 응답하면서 비판여론을 수렴하는 것이 국정 최고책임자의 소통이며 책임있는 민주적 리더십이다.
김만흠 전 국회 입법조사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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