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일본 정부가 네이버(
NAVER(035420))를 겨냥해 촉발된 이른바
‘라인 사태
’가 아직 끝나지 않은 가운데
, 국내 플랫폼 산업에 또 다른 암운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법
’ 재추진 의지를 재확인하며 규제 법제화 강행을 예고한 까닭입니다.
네이버와 카카오 사옥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20일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윤석열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플랫폼 독과점 문제는 법제화를 통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는데요. 그러면서 “현재 이해관계자 및 학계 의견을 듣고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 플랫폼법 제정을 추진 중”이라며 “국회에서도 법안의 필요성과 내용을 잘 설명해 입법을 지원하겠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공정위가 입법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플랫폼법’은 국내외 플랫폼 기업들의 독과점 폐해를 막겠다는 취지로 마련됐습니다. 독과점 플랫폼의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 반칙 행위를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당초 공정위는 올해 초 독점적 플랫폼을 지배적 사업자로 ‘사전 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입법 추진을 본격화하려 했지만, 업계 반발에 한발 물러선 상태였는데요. 다시금 이 같은 추진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이에 최근 ‘라인 사태’ 등 ‘경제 안보’를 둘러싼 각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지만, 공정위의 여전한 ‘규제’ 일변도의 움직임에 업계의 시름만 깊어지고 있습니다. AI(인공지능) 시대가 가속화하면서 해외 각국이 ‘경제 안보’를 위해 자국 플랫폼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공정위의 플랫폼법이라는 ‘규제의 칼’은 현 시국에서 산업 진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입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1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 기자 간담회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공정거래 정책 성과와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한 위원장은 EU(유럽연합)과 독일, 영국, 일본 등의 ‘사전 지정 제도’ 법제화를 언급하면서 국내 도입 의지도 시사했는데요. 이는 AI나 플랫폼 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은 상황 속 글로벌 빅테크의 규제를 강화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으로 이미 생태계 마련이 된 우리와는 다소 상황이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각국들이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고 하는 상황이지만, 플랫폼법은 100% 우리 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밖에 없는 규제”라며 “공정위가 플랫폼 산업에 대한 이해를 더 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구글 (사진=뉴시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플랫폼법이 국내에 진출한 해외 플랫폼 사업자에게는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국내 업체만 규제할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히 팽배한 상황인데요. 국내에서 매출이나 점유율 등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해외 플랫폼들은 ‘사전 지정’의 법망을 빠져나갈 가능성도 높습니다. 또한 부당 행위를 판단하기 위해 알고리즘 등을 들여다봐야 하지만 국내에 서버가 없는 해외 플랫폼의 경우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여전합니다.
깜깜이 법안 역시 논란입니다. 한 위원장이 “학회 심포지엄 등을 통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며 내부적으로 여러 대안을 고심 중”이라고 밝혔지만, 업계는 여전히 공정위의 소통 행보가 미진하다는 입장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소통이) 전혀 안 되고 있다”라며 “매우 중요한 법인데도 업계와 공청회 등 논의도 없었다”라고 주장했는데요.
또 다른 관계자는 “선진국들은 규제의 법 조항을 만들 때 후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항 하나하나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면서 만든다”라며 “하지만 법안 자체가 공개되지 않아 규제 대상 가능성이 높은 플랫폼들은 내용을 전혀 몰라 문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은 국부도 창출해야 하고 고용도 해야 하고 좋은 서비스도 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R&R(역할과 책임)이 있는데 또 다른 것들이 생겨버리니까 많이 힘들어지는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 업계는 이달 말 개원을 앞둔 제22대 국회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하면서 입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데, 민주당은 공약을 통해 국내외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독과점 폐해 방지 등 ‘기울어진 온라인 플랫폼 시장을 바로잡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 역시 총선 공약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규제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업계 관계자는 “여름이 지나고부터는 또 (플랫폼 규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여러 가지로 너무 힘들다”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규제’보다는 ‘산업 육성’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책 우선순위에서는 지금 이제 규제보다는 오히려 자국 플랫폼 산업을 육성하거나 지원하는 쪽이 더 급하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지금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은 당장 큰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논거들이 타당한지 받아들이기 어렵다”라며 “외국에 나가는 것을 지원하는 것도 포함해 플랫폼 산업을 지탱할 수 있는 정책들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제언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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