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미디어 비평)우크라이나,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과 한국 언론자유지수
2024-05-20 06:00:00 2024-05-20 06:00:00
이달 초 국경없는기자회가 한국 언론자유 상황에 경고장을 보냈다. 한국 언론자유지수 순위를 지난해 47위에서 올해 무려 15단계나 떨어뜨려 62위로 낮춘 것이다. 작년에는 4단계로 그나마 소폭 하락이었다면, 올해 15단계 하락은 그냥 하락이 아니라 ‘추락’이다. 
 
62위의 언론자유란 어떤 수준일까? 국경없는기자회의 18개국 순위 분류표를 보면 로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같은 북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이 주로 속해있는 1~8위는 연두색으로 언론자유 ‘최상위(good situation)’그룹이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당시 한국(30~40위권)이 속한 9~45위는 노란색으로 ‘만족스런 상황(satisfactory situation)’을 뜻한다. 이 때 한국의 언론자유도는 아시아 지역 1위였다. 이명박 정부(69위), 박근혜 정부(70위)와 함께 윤석열 정부가 올해 받은 62위는 46~95위의 주황색에 포함되는데 ‘문제있는 상황(problematic situation)’으로 분류된다. 이스라엘, 멕시코, 필리핀이 속한 96~144위는 ‘어려운 상황(difficult situation),’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속한 145~180위는 ‘매우 심각한 상황(very serious situation)’이다.   
 
우리나라의 62위보다 순위가 한 단계 높은 61위 나라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다. 전쟁 중인 국가라면 정부나 군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언론을 엄격하게 통제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한국이 그런 정도의 언론자유 보다 한 단계 낮은 상황이라는 뜻이다. 
 
60위권에 속한 나라 중에는 서아프리카에 서로 인접해있는 라이베리아(Liberia, 60위)와 시에라리온(Sierra Leone, 64위)이 있다. 수십 년간 심각한 내전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이 초토화됐으며, 1인당 국민소득이 최근까지 1천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난한 나라다. 백과사전에는 ‘2022년 시에라리온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는 세계에서 마다가스카르, 남수단, 부룬디 세 나라 밖에 없다’고 나와 있다. 한국보다 한 단계 낮은 63위에는 동아프리카의 말라위(Malawi)라는 이름의 국가가 올라있다. 이름도 낮선 이 나라는 내전을 겪지는 않았지만 극심한 식량위기로 국민들이 굶어죽기도 하는 세계 최빈국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소득 1천 달러에 미치지 않는 아프리카 최빈국들과 3만 달러가 넘는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비슷한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수준이 우리와 비슷한 나라인데 우리보다 언론자유지수 순위가 낮은 나라가 한 군데 있다. 70위의 일본이다. 경제 선진국 일본의 언론자유가 이렇게 형편없는 이유는 극우 성향의 아베 정권 이후 일본 정부와 기업이 언론인에 대해 벌인 교묘한 압력과 통제 때문이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오랜 동안 일본 정부가 언론과 유착관계를 맺는 고리로 활용해온 ‘기자클럽 제도’를 언론자유 훼손의 이유로 꼽았다. “기자클럽 제도가 언론의 자기검열과 외국인 언론인들의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일본의 ‘기자클럽’은 우리나라의 ‘법조기자단’ 같은 출입처 기자단 제도와 비슷하다. 
 
국경없는기자회는 한국 언론자유 순위를 낮게 평가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들을 고소고발하고 공영방송 경영진 임명에 개입한 사실을 지적했다. 윤 대통령 욕설 보도에 대한 ‘차별적 조치’도 언급했다. 국경없는기자회만 이런 지적을 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보수적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가 올해 펴낸 세계 자유보고서와 미국 국무부의 인권보고서 한국 편에도 이런 내용이 소상히 언급되어있다. 그런데도 윤 정부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언론자유 순위가 추락했다는 보도가 난 다음날에도 공영방송 EBS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었다. 우리나라 언론자유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아프리카의 세계 최빈국 수준으로 추락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생각일까.   
 
김성재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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