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의 일꾼을 뽑는 선거가 끝났다. 개표 결과는 200석에 가까운 야권의 압승 혹은 100석 조금 넘는 여권의 참패였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나 입 있는 사람 백 명이 승패의 백 가지 원인을 말하지만, 이번 총선의 경우 백 명이 말하는 압승과 참패의 원인은 한가지다. 거대한 민심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의 회초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한 달여 전 ‘이번 총선에서 심판해야할 것’ 제목의 칼럼에서 필자는 “공천이 마무리되고 나면 이번 총선에서도 다시 정권심판론과 야당견제론이 유력한 프레임으로 부상할 수 밖에 없다”고 썼는데, 다행히 그렇게 됐다.
사실 이번 선거 중에 언론이 내세운 민심은 ‘정권심판’이 아니었다. 정권심판 민심이 주류 언론,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에서 주요 선거 프레임으로 본격 작동한 것은 선거를 불과 20여일 앞둔 ‘대파 파동’ 이후부터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18일 농협 하나로 마트를 방문해 대파를 집어들더니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복장 터지는 이 말에 민심은 폭발했다. 인터넷에서, SNS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갑자기 ‘대파 난리’가 났다. 그 때부터 주류 언론들도 ‘대파 선거’ ‘정권 심판 선거’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대파’ 민심이 폭발하기 전에도 이미 바닥 민심은 ‘정권 심판’ 쪽에 서있었다. 언론이 이를 감추고 보여주지 않았을 뿐이다. ‘대파’가 상징하는 고물가에다 소득감소, 경기침체, 부자감세, 재정악화, 부채증가 등으로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 같은 서민·중산층들의 삶은 팍팍해져왔다. 국민 ‘입틀막’에 언론장악·언론탄압,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은폐, 피의자인 국방장관 도피성 대사 발령, 검찰독재로 인한 심각한 민주주의 훼손,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주가조작·명품백 수수 등 비리의혹 등으로 민심은 이미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875원 짜리 대파’가 불을 지른 것뿐이다.
주류 언론들은 이런 민심을 읽지 못한 채, 혹은 일부러 외면하고 감춘 채 성난 국민들에게 엉뚱한 이슈만 던졌다. 지난해 말 한동훈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꺼낸 시대착오적인 ‘운동권 심판론’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을 ‘종북 색깔론’으로 몰기도 했다. 국민들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비명을 지르는데 딴소리를 한 것이다. ‘운동권 심판론’이 호응이 없자 정부여당의 ‘서울메가티시론’같은 포퓰리즘 정책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황당하고 무모한 정책에 좋은 반응이 나올 리 없다. 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 공천에 ‘친명’ ‘비명’ 갈라치기로 흔들었다. 선거와 정치에 대한 혐오를 퍼뜨림으로써 유권자들이 총선에 관심을 끊거나 정권 무능·비리에 무감하도록 여론을 왜곡·호도한 것이다. 그러나 민심은 언론이 만들어낸 이런 가짜 여론에 속지 않고 정권심판 투표에 나섰다.
선거 다음날 모든 주류 언론들은 얼굴을 싹 바꿨다. ‘민심 폭발’ ‘정권 심판’이란 제목을 톱뉴스의 제목으로 올렸다. 순식간에 가면을 바꿔 쓰는 중국의 전통극 ‘변검’이 따로 없다. 민심을 잘못 읽거나 외면한 이 정부처럼 언론도 실패한 것이다. 정부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하거나 감싼 실패한 언론도 국민의 심판대에는 올라있다. 22대 국회가 언론개혁을 추진해달라는 성난 국민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김성재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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