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실버타운, 할 거면 제대로 하자
2024-04-03 06:00:00 2024-04-03 06:00:00
우리나라 최초의 실버타운은 1988년 경기 수원시에 문을 연 유당마을입니다. 당시만 해도 고령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요양시설과 구별이 잘 안 되는 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죠. 현재 최고 수준의 실버타운으로 꼽히는 곳은 서울 광진구에 있는 더클래식500입니다. 보증금 9억원에 관리비 등으로 매월 500만원 이상을 내야 하는데도 희망자가 많아 대기자가 줄을 섰습니다. 서울 강남구의 더시그넘하우스는 보증금만 10억3000만원입니다.
 
실버타운, 정확한 법적 용어로는 '노인복지주택'입니다. 노인복지주택은 주택법이 아닌 노인복지법에 의거 분양과 매매, 임대에 제한(만 60세 이상만 가능)을 받는 준주택인데요. 현재 전국에서 운영 중인 실버타운은 수백여 곳입니다. 하지만 이 중 100인 이상 입주가 가능하고 운영상 문제가 없는 제대로 된 실버타운을 추려보면 대략 40곳에 불과한데요. 또한 이들 실버타운에 수용 가능한 인원도 9000명 수준입니다. 겉모양만 그럴듯한 실버타운이 우후죽순 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실버타운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1만6724곳에 입주자 63만명인 일본과는 비교조차 어렵습니다.
 
문제는 가난한 노년층입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사회보장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산출한 노인빈곤율이 45.6%에 달하는데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지난 2월 기준 981만8975명입니다. 곧 1000만명을 돌파한다고 고려하면 456만명이 빈곤층인 셈입니다. OECD 국가 중 33위로 꼴찌 수준입니다. 보증금이 수억 원대고 생활비가 수백만 원씩 드는 고급 실버타운.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인 셈입니다.
 
정부는 최근 22번째 민생토론회를 통해 실버타운 대책을 내놨는데요. 2015년 폐지된 분양형 실버타운 제도를 다시 도입하고 민간 사업자 진입을 어렵게 하는 제도를 개선해 실버타운 건설이 활성화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실버스테이나 헬스케어 리츠와 같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어르신 친화 주택을 도입하겠다고 밝혔죠. 다양한 형태의 실버타운이 등장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다만 저소득층을 위한 고령자 복지주택을 제외하면 목돈이 필요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일자리와 돌봄, 의료, 간병, 요양 등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는 것도 필요합니다. 정부는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에만 분양형 건설을 허가한다고 했는데요. 투기수요를 줄이는 목적이지만 민간이 인구감소지역에 짓거나 수요자가 살려고 할진 의문입니다. 초고령화 시대, 노인 인구 1천만 명 시대를 앞둔 과제를 그냥 지나기는 어렵습니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촘촘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마침 정치권도 실버 표심을 잡기 위한 어르신 친화적 총선 공약을 잇달아 내놨습니다. 법 개정도 필요하니 정부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고령화 시대에 걸맞은 종합적인 청사진을 마련하길 바랍니다.
 
강영관 산업2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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