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의 회장님 돋보기)'그레이트 챌린저' 김승연 한화 회장은 '모태신앙'
부친 김종희 선대회장의 영향으로 성공회 신자…세례명은 '프란시스'
부친·모친·부인·큰아버지·작은아버지 등 일가가 성공회교
신년사서 "그레이트 챌린저"…우주·항공,조선해운 아우르는 사업 방향성 제시
2024-03-11 06:00:00 2024-03-12 08:07:04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독실한 성공회 신자입니다. 성공회교가 모태신앙으로 세례명은 '프란시스'인데요.
 
대부분의 총수들이 종교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거나 기독교나 불교 등 널리 알려진 종교 생활을 하는 것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어서 눈길을 끕니다.
 
성공회교는 영국 잉글랜드에서 기원한 종교로 165개국에 1억2000만명 정도의 교인을 두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 비해 교세가 크지 않고 교인이 적은 편입니다. 국내 대기업의 총수가 소수 종교의 신자가 된 배경은 과거 어려웠던 한국의 시대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11일 "김 회장이 성공회교 신자가 된 것은 부친이자 창업주인 현암 김종희 선대회장의 영향"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고 김 선대회장이 살던 동네에 성공회 선교사들이 들어와 못살던 동네 아이들을 먹여주고 입혀주면서 보살피는 선교활동을 해왔다"며 "김 선대회장이 성공회교 선교사들의 활동에 감화돼 신도가 됐고, 아들인 김 회장은 자연스럽게 모태신앙이 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사진=한화 제공)
 
김 회장과 성공회교의 인연은 100여년 전인 부친의 사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22년생인 김 선대회장은 충남 천안 부대리(현 천안시 서북구 부대동)에 위치한 북일학교를 다녔는데요. 현재의 초등학교격인 이 학교는 성공회 신자들이 세우고 영국 성공회 신부 세실 쿠퍼(한국명 구세실·具世實)가 교편을 잡은 서양식 교육 기관이었습니다. 김 선대회장은 북일학교에서 공부하며 독실한 성공회 신자로 자랐고, '디도'라는 세례명을 받게 됩니다. 김 선대회장은 어린 아이였던 김 회장을 데리고 서울 정동에 있는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을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 
 
또다른 관계자는 "효심과 부성애가 강한 김 회장이 부친을 따라 독실한 성공회 신자가 된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렇다보니 김 회장의 인생 대소사는 성공회교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년 시절에는 성공회 성당에서 복사(服事) 활동을 했고,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부친의 영결식도 성공회 서울 대성당에서 성공회 의식으로 거행된 바 있습니다. 충북 보은의 한화 화약공장에는 김 회장의 세례명을 딴 '성 프란시스 성당'이 건립됐습니다.
 
김 회장은 성공회교 활동에 남다른 애착을 보여왔는데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성공회대학교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성공회대에 김 회장의 이름을 본 딴 '승연관' 건물이 있는 건 재계에서 널리 알려진 일화입니다. 
 
김 회장 세 아들(동관·동원·동선)들의 종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재계 한 인사는 "김 회장을 비롯해 부친과 모친, 고인이 된 서영민 여사까지 독실한 성공회 신자"라며 "김 회장의 큰아버지인 고 김종철 총재와 작은아버지인 고 김종식 의원도 성공회 신자라는 점에서 가족 전체가 성공회 신자라고 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김 회장은 올초 신년사에서 "그레이트 챌린저(Great Challenger·위대한 도전자)"를 강조하면서 '도전'과 '혁신'을 주문했습니다. 기존 주력 사업에 대해 "익숙한 판을 흔들고, 당연한 것을 뒤집는 도전이 꼭 필요하다"고 했고, 신규 사업에 관해선 "그룹의 미래를 이끌지만,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더욱 깊이 몰입해 추진해야 한다"고 독려했습니다.
 
재계에선 김 회장이 한화의 주력 사업인 방위산업을 기반으로 우주·항공, 조선해운까지 아우르는 산업으로 박차를 가하겠다는 사업 방향성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몇 년 전부터 대부분의 대외활동을 장남 김동관 부회장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매년 신년사 낭독은 빠지지 않고 직접하고 있습니다. 2선에 물러나 있지만 구성원에 당부하는 메시지이자 그룹이 나아갈 방향은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입니다.
 
한화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1952년생인 김 회장은 함께 성장한 한화와 자신을 동일시한다"고 그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했습니다. 한화의 전신인 한국화약은 1952년 10월 설립됐습니다. 김 회장 역시 "나와 회사는 똑같은 전쟁둥이요 창업둥이"라며 "우리는 나이가 같아 내 평생이 곧 회사"라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29세 나이에 회장에 오른 창업둥이 김 회장은 어느덧 '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을 훌쩍 넘은 72세의 재계 원로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의 동지이자 '평생'인 한화는 100년 기업을 꿈꾸고 있습니다. "100년 역사의 기업도 찰나의 순간 도태되는 것이 냉혹한 현실", "차원이 다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스스로 혁신하는 그레이트 챌린저가 돼야 한다"는 김 회장의 신년 메시지는 어쩌면 일흔의 경영자가 된 자신에게 건넨 자답이 아니었을까요.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모습(사진=한화 제공)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