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째 거부권…삼권분립 흔드는 '권력 사유화'
민주화 이후 정부 중 최다…쌍특검·이태원특별법 재표결 시점 '촉각'
입법부 견제 수단 남용…"세계적 추세 역행"
2024-01-30 17:21:14 2024-01-30 18:04:58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또다시 '재의요구권(거부권) 남용'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30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안)'에 끝내 거부권을 행사했는데요. 야당에선 "입법권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반발했습니다. 일방통행 중인 윤 대통령은 취임 후 9번째 법안 거부권을 발동하며 민주화 이후 최다 기록을 또 한 번 경신했습니다. 
 
 
 
취임 2년도 안 됐는데…민주화 이후 거부권 '최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9개월 사이 9개 법안에 대해 국회 재의결을 요구했습니다. '87년 체제'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사용한 정부로 기록됐습니다.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총 7번의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6번,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각각 2번과 1번의 거부권을 사용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사용의 역사는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는데요. 그 후 '간호법 제정안'(5월16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12월1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12월1일) 등 야당 주도로 통과된 쟁점 법안에 줄줄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국회로 되돌아온 법안들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통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모두 폐기됐죠. 
 
해가 바뀐 직후에는 자신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별검사를 요구하는 이른바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비롯한 '쌍특검법'에 거부권을 발동해 '방탄 거부권'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도 결국 앞선 법안들과 같은 운명을 맞았습니다. 민주당은 쌍특검법과 이태원 특별법의 재표결 시점을 종합적으로 논의한다는 방침입니다.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20표가량 나온다면 재의결이 가능한 만큼, 여당 공천의 윤곽이 나올 때까지 최대한 미뤄보겠다는 심산입니다. 
 
"거부권 남용, 헌법수호 책무 저버린 것"
 
윤 대통령의 무차별적인 거부권 사용에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서의 비판도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입법부를 견제한다'는 당초 목적과 달리 정책적 견해 차이로 거부권을 남발하고 있다는 겁니다. 
 
헌법에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요건을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은 법률안이 이송된 뒤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제53조 2항)고 규정합니다. '이의가 있을 때'라고만 명시했을 뿐 별도의 요건을 구체적으로 적지 않은 탓에 대통령의 거부권 사용 자체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재단할 근거는 없는 셈입니다. 
 
국무회의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의결된 30일 오후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서울광장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과 면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헌법학계에서는 '대통령의 거부권이 남용될 수 없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국회의 입법권을 근본적으로 무효화시키는 강력한 권한인 만큼, 나름의 원칙 안에서 사용이 돼야 한다는 것인데요. 정철 국민대 교수의 논문 '법률안 거부권의 헌법적 의의'에 따르면, 거부권은 적극적으로 해석하더라도 △국익에 위배되는 경우 △정부에 부당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법률인 경우 정도에만 허용 가능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수반돼야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주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총장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사용은) 역사적으로 대통령 거부권 행사 빈도가 줄어들고 있는 전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꼬집었는데요. 그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안의 재의요구 사유로 빠지지 않고 포함되는 것이 '입법과정에서 충분한 협의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의 부족'인데, 이를 재의요구 사유로 포함시키는 것은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무를 저버린 것"이라고도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하 사무총장은 대통령실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안이 제안된 사회적 배경과 관계인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오로지 정책적으로 반대한다는 이유로 국회의 입법권을 형해화 시키는 거부권 행사가 가능한지 깊은 의문이 든다"고 언급했는데요. "국회를 구성하고 대통령을 선출하는 주권자인 국민이 국회를 통해 형성한 의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을 윤 대통령은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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