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가 70여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국민의 일꾼이 되겠다는 예비후보들의 출마 선언이 연일 이어지고 기존 정당들은 지지층 다지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정치인들의 언사가 많이 주목받고 회자되는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국회의원이라는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정치인들은 국민과 민생, 살림살이를 줄곧 입에 담습니다. 그중에서도 여야 가리지 않고 주창하는 것이 있으니 '국민의 눈높이' 입니다. 어떤 현안에 대해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 어려울 때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국민의 눈높이를 찾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논란을 물었을 때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당의 분열 양상에 대한 대책을 물었을 때도 이들은 모두 어김없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눈높이. 사전적 의미로는 관측할 때 수평으로부터 관측하는 사람의 눈까지의 높이 혹은 어떤 사물을 보거나 상황을 인식하는 안목의 수준을 말합니다. 그들이 찾는 국민의 눈높이는 후자의 뜻일 테지요.
국민의 눈높이 만큼이나 일상에서 자주 쓰는 눈높이는 '어린이의 눈높이' 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육아 지침서에는 천편일률적으로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의 행동을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아이들이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 같지만 모두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대다수의 부모들은 육아 멘토의 조언대로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의 행동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대체로는 아이가 직접 그 이유를 직접 말해주기 전까지는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애들 눈높이 맞추는 게 뭐 그리 힘들겠어?"라고 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어른들이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깊습니다.
실제로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소파 위에 올라가지 말아라", "음식은 따뜻할 때 골고루 먹어라" 등등 매일 같이 똑같은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나름의 항변을 합니다. 소파 위에서는 종이비행기가 더 멀리 날아갈 것 같아서 올라가 본 것이었고, 반찬은 오늘따라 조금 더 맵게 느껴져서 먹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하느라 바빠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을 미안하다고 사과하니 "엄마는 잠을 조금 밖에 못 자서 피곤할 것 같다"며 예상치 못한 말로 되레 엄마를 다독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도 모르게 나만의 잣대로 판단했구나'하는 생각에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정치인의 유행가 같은 국민의 눈높이로 다시 되돌아 가 볼까요. 어른들이 아이들의 눈높이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듯, 정치인들도 국민의 눈높이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같은 국민을 바라보면서 서로 다른 답변을 요하는 질문들에 모두 국민의 눈높이만을 앞세우는 것은 순간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함은 아닐까요. 과연 진심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은 해보았을까요.
오늘도 어디에선가 국민의 눈높이를 부르짖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국민의 눈높이는 무엇입니까.
김진양 국회팀장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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