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424일
광장에서 현장에서…1년 넘게 '진상규명' 외침
세월호 참사 8년 만에…국가의 존재 이유 묻다
2023-12-26 06:00:00 2023-12-26 06:00:00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서울 이태원 한복판에서 159명의 꽃다운 생명이 희생됐습니다. 사계절이 지나 424일(26일 기준)이 흘러도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에게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주체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참사 희생자와 유족의 시간은 멈췄지만 정부도, 정치권도 변한 것은 없습니다. 지휘권을 행사하는 윗선에서는 누구도 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참사 책임을 묻는 수사와 재판도 지지부진하기만 합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얻은 교훈은 보이지 않고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는 역사는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책임지지 않는 사회는 결국 또 다른 참사를 예고할 뿐입니다. 
 
"우리는 책임이 없다"
 
지난해 11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는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리면서 159명이 숨지는 등 압사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폭 3.2m에 길이 40m 비탈길에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한 유례없는 참사였습니다. 대한민국도, 전 세계도 놀랐습니다. 
 
사실 막을 수 있었고, 살릴 수 있었습니다. 사고 발생 4시간 전인 6시34분부터 참사를 우려한 신고가 빗발쳤지만 누구 하나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를 막느라 여념이 없던 수백명의 경찰력은 사고 발생 후에야 현장에 도착했고, 구조요원들도 속속들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뒤엉켜 쓰러져 가는 인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8년 만에 우리는 또다시 '과연 국가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례없는 참사가 발생한 지 424일, 대한민국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고한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에 대해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장관도, 경찰도, 누구 하나 '내 탓이오'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정치집회 성격이 짙다는 이유로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참사 이후 지난 1년여간 시민과 유족들은 '이태원 참사는 누구 책임이냐'고 물어왔습니다. 행정안전부, 경찰, 서울 용산구 등 정부 기관이 그간 밝힌 입장을 종합하면 그 대답은 "우리는 책임이 없다"로 요약됩니다. 
 
행안부는 국가재난대응 체계의 총책임 부처입니다. 경찰은 인파 관리 등 공공 안전의 핵심 기능을 담당합니다. 용산구는 관할 지방자치단체로서 역할이 있습니다. 하지만 각 기관의 수장은 약속이라도 한 듯 참사 책임에서만큼은 모두 침묵했습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는 지난 7월 말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습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난 6월 초 보석으로 풀려나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특별수사본부 수사과정에서 서면조사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고 있고 최근 경찰청 인사에서도 유임됐습니다. 이태원 참사 관련 1심 재판을 받게 된 용산경찰서·용산구청의 몇몇 실무자들이 현재로서는 책임지는 이의 전부입니다.
 
지난 10월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인근에서 참가자들이 '이태원역1번출구' 모형을 들고 추모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는 없었다"
 
끝내 무뎌지지 않는 슬픔이 있습니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2022년 10월29일 이후 그렇게 유족들의 시간은 멈췄습니다. 목숨과도 같은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고도 유족들은 국가로부터 어떤 위로도, 공감도, 치유도 받지 못했습니다.
 
유족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국가는 없었다"며 이태원 참사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불발된 데 대해서는 입장문을 통해 "유가족들이 얼마나 더 살을 깎고 뼈가 녹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이 절박한 절규의 답을 얻을 수 있을지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십 수일간 노숙하고 눈 덮인 국회 담장 길을 따라 오체투지 행진도 했지만 끝내 국회는 화답하지 않았다"며 "지난 경찰 특수본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가 보여준 한계를 잘 알면서도 특별법 제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디 여야 모두가 정치적 계산과 진영논리를 잠시 접어두고 진실규명과 안전사회를 만드는 일에 마음을 모을 것을 당부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침몰, 이태원 참사까지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는 역사는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국가는 없었습니다. 책임지지 않는 사회는 결국 또 다른 참사를 예고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들과 종교인들이 이태원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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