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지정감사제)’ 도입으로 감사 시간과 보수가 크게 늘었다는 기업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과도한 회계비용 부담을 이유로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일각에선 감사계약 종료 시점 감사비용과 시간이 늘어나는 점을 지적하며 회계법인의 감사 갑질 논란까지 나옵니다.
지정감사제 후 보수 급증…회계법인 변경 전 감사 강도↑
(그래픽=뉴스토마토)
1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회사 한 곳의 평균 감사보수는 약 2억7560만원으로 제도 도입 전인 2018년(약 1억3830만원) 대비 2배 급증했습니다. 상장기업들의 감사보수 증가율은 연평균 17.8%에 달하는데요. 기업들은 감사보수 증가의 원인으로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 시행을 꼽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회계법인을 지정해 주면서 시장 경쟁이 훼손됐고, 회계법인의 감사보수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설명입니다.
지정감사제는 직권지정과 주기적 지정으로 구분됩니다. 직권지정은 회계부정 위험 등 지정사유 발생 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입니다. 회계부정 위험 등이 있는 만큼 감사시간과 감사보수도 증가할 수밖에 없죠. 다만 주기적 지정은 회계부정 위험과 관계없이 6년간 감사인을 자유선임하면 그 후 3년간은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합니다. 지난 2018년 시행된 신외부감사법에 따라 도입됐으며, 2020년 본격 시행됐습니다.
기업들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로 감사 시장의 자율성이 훼손됐다고 지적하는데요. 일각에선 과도한 감사보수와 감사자료를 요구하는 등 ‘갑질’ 논란이 나옵니다. 기업들은 회계법인이 교체될 시기에 감사인의 무리한 요구가 특히 증가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감사인이 지정되면서 감사비용에 대한 협상력이 떨어진다”면서 “직권지정뿐 아니라 주기적 지정으로 들어온 감사인들도 굉장히 강압적으로 나오는데 상당히 높은 보수를 요구해도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특히 다른 회계법인으로 바꾸기 직전은 감사 강도가 높아지는 시기”라고 덧붙였습니다.
변경 직전 감사인 보수 협상력 높아져
실제 일부 상장기업들의 경우 지정감사제 종료를 앞두고 감사비용이 급격히 늘어나기도 했는데요.
피엔티(137400)의 경우 지난 지정감사제로 2020년부터 2022년 결산까지 외부감사인을 다산회계법인으로 지정했는데요. 2020~2021년 1억7000만원이던 감사보수는 2022년 3억2000만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자이에스앤디(317400)는 감사계약 만료 시점 보수가 4억5000만원(2022년)으로 전년(1억7000만원) 대비 2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이밖에
HMM(011200),
다날(064260),
리노공업(058470),
지니너스(389030),
지니뮤직(043610),
컴투스(078340),
상상인(038540) 씨앤씨인터내셔널(352480),
나노브릭(286750),
알파홀딩스(117670),
한국유니온제약(080720),
아이윈(090150) 등도 감사인 변경을 앞두고 감사보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통상 기업과 회계법인은 3년 단위로 감사인을 재지정하고 연 단위로 보수 협상을 합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매해 감사보수를 소폭 인상하는 것이 관례였는데요. 기업들은 주기적 지정제 도입이 예상되거나 지정제를 앞둔 기업들이 감사인 교체 직전 감사보수를 높일 때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회계법인이 감사의견을 내리는 만큼 ‘갑’과 ‘을’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실제 한국회계사회 ‘2022년 회계저널 2월호’에 실린 논문(임유니, 염승훈)에 따르면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도입을 앞두고 감사인 교체 직전 감사인(회계법인)의 감사보수 협상력이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회계법인의 감사보수 적정성·투명성 문제는 신외감법 도입 이후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인데요. 금감원 역시 감사위험과 무관하거나 부당한 감사보수 인상에 주의를 주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금감원은 국내 대형 회계법인 4개사(삼일·삼정·한영·안진)와 간담회를 개최하고 감사보수 산정과 관련한 일관성있는 내부기준 마련을 당부했습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정감사제의 도입 취지인 감사품질 향상 효과보단 회계법인의 감사보수 부담이 더 큰 것 같다”면서 “감사보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사전통보 기업 명단을 알아야 하는데 당국에선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통계자료 확보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표=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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