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군사합의 폐기 수순…'군사충돌 명분' 우려
북 3차 군사정찰 위성 발사 계기…"7차 핵실험 초래할 수도"
2023-11-16 06:00:00 2023-11-16 06:00:00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윤석열정부가 북한이 3차 군사정찰위성 발사할 경우, 이를 계기로 9·19 남북 군사분야 합의 일부 조항을 효력 정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정부는 북한의 추가 도발 수위에 따라 단계적 효력 정지에 이어 최종 백지화를 구상하고 있는데, 북한이 이를 빌미 삼아 제7차 핵실험 및 추가 군사도발을 강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일부 효력 정지 후 최종 폐기 수순 
 
현지시간으로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순방의 주요 목표를 북러 무기 거래에 따른 세계 각국과의 '안보 공조'로 설정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APEC 참석을 앞두고 한 AP 통신 서면인터뷰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불법적 협력이 한반도와 역내 안보는 물론 세계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임을 강조하고 공조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인터뷰에서 주목되는 건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도를 '핵 투발 수단의 고도화'로 평가했다는 겁니다. 그는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한다면 이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의 한 단계 상승을 의미한다"며 "강화된 대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인터뷰 직후 관련 부처에서는 그간 9·19 군사합의 폐기에 대한 원론적 입장보다 한층 강화된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14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행동을 주시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통일부는 안보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국가안보상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효력정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왔는데, '북한의 행동'을 전제로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나가겠다는 입장으로 바뀐 겁니다. 외교부와 국방부 역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며 9·19 군사합의 폐기 수순에 대한 보조를 맞추고 있습니다.
 
북한의 3차 군사정찰위성 발사 정황은 이미 포착됐습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는 군사정찰위성 발사 장소인 평안북도 동창리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야간 불빛을 관측했다고 밝혔으며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지난 2일 "발사 준비는 이미 완료됐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북한은 '미사일 공업절'로 지정한 오는 18일에 3차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할 경우 9·19 군사합의 조항 중 대북 정찰 능력을 제한하는 부분을 우선 정지할 전망입니다. 군사합의서 제1조 3항은 고정익항공기(날개가 고정된 항공기·전투기나 정찰기 등)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서부 20㎞·동부40㎞의 비행을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는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북한에 통보하는 절차로 이뤄져있습니다. 정부가 대북 정찰 능력 제한 조항을 우선 정지하면 군은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정찰을 재개한다는 방침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9월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의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을 교환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정원 싱크탱크도 “북한이 빌미 삼을 것”
 
문제는 우리 정부가 9·19 군사합의를 먼저 폐기했을 때 발생할 파장입니다. 국정원 싱크탱크 격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도 9·19 군사합의 폐기에 따른 여파로 남북간 군사적 긴장 고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고재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전략연구센터장은 지난 14일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 시 북한이 이를 빌미로 제7차 핵실험과 무력도발 등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습니다. 다만 고 센터장은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에 따른 군사긴장보다 안보 기대 효과가 더 높다는 입장입니다.
 
군사분계선 근처 무인기·정찰기 비행이 제한돼 있어 대북 감시·정찰 능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것이 정부의 9·19 군사합의 폐기 근거입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송갑석 민주당 의원은 "이스라엘은 9·19 군사합의 같은 감시·정찰에 대한 제약이 전혀 없는데도 하마스의 기습을 받았다"면서 "9·19 군사합의 이전에도 산 뒤에 있는 북한 장사정포는 정찰이 힘들었다"고 반박했습니다. 북한 장사정포는 산 밑 갱도에 배치해뒀다가, 발사 시 산 뒤로 빼서 운용하는데 9·19 군사합의 이전에도 초계기 등의 우리 정찰·감시 시스템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입니다.
 
5년 전 9·19 남북군사합의 체결 당시 국방부 대북정책관으로 핵심 역할을 한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지난 5년 동안 군사정찰 분야의 문제는 특별한 것이 없었을 뿐 아니라 역대 우리 정부에서도 (정찰 능력) 보완에 대해 노력해왔다"며 "특히 북한과 우리의 정찰 감시 능력은 크게 벌어진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윤석열정부가 북한의 3차 정찰위성 발사를 명분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도 "장거리 탄도미사일이나 정찰위성 발사는 통상 전략적 도발이라고 한다"며 "9·19 군사합의는 접경지역 일대의 상호 적대 행위를 중지시킨 전술적 수준의 위협과 도발 행위를 막는 것인데, 군사합의 폐기를 위해 터무니없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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